"헌법재판소는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국민의 믿음과 신뢰를 쌓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기관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런데 지금의 헌재 모습이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기관일까요?"
지난 주말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반탄(탄핵 반대) 집회에 다녀온 30대 청년 A의 말이다.
A는 처음엔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행위'이기에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지지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답을 정해 놓고 몰아치듯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지난 17일 대구 변호사 126명이 헌재의 재판 절차 편향성·불공정성을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피청구인(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 침해 ▷검찰 수사 기록 증거 채택 위법 ▷피청구인의 직접 증인신문 불허용 ▷변론 횟수 제한 재판 공정성 침해 등 헌재의 재판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위법 사항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몰아치듯 진행하고,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은 4분의 1도 채택하지 않으면서 초시계까지 동원해 증인 한 명당 신문 시간을 90분으로 제한하는 등 대통령의 방어권을 침해했다는 게 요지다. 또한 검찰에서 송부받은 수사 기록을 주요 증거로 삼으려 하는 등 헌법재판소법까지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재의 신뢰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매일신문 의뢰로 지난 8~9일 한길리서치가 전국 18세 이상 남·여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헌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4.9%였다.
헌재는 비교적 최근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국가기관으로 꼽혔다. 지난해 12월 엠브레인퍼블릭 등 여론조사 4사의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헌재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70%에 육박하는 등 1위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신뢰도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
대통령(행정)과 국회(입법)는 국민이 투표로 직접 뽑는다. 사법부는 국민이 뽑지 않는다. 그럼에도 삼권 분립의 한 축이 돼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재판관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누구나 믿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부의 맨 꼭대기에 있는 헌재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헌성과 탄핵, 정당 해산, 권한쟁의, 헌법소원의 일체 심판을 관장한다. 이같이 제왕적 대통령제 부럽지 않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헌재는 사법부의 최종적 권위다.
이런 권위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부터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지금까지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을 보면 헌재 스스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반응이 많다. 그동안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편향적이고 정파성을 노출한 각종 논란과 의혹을 증폭시키거나 방관했다는 게 이유다.
헌법학자인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졸속 재판'으로 자신의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는가? '재판의 신속성'이라는 명분으로 항변하기에는 너무 졸속이다. 다른 재판과의 형평도 전혀 맞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 판결은 단심제다. 한 번 내려진 결정은 돌이킬 수 없다. 법리를 곡해하고 양심을 내버려도 헌재의 판단은 되돌릴 수 없다. 재판의 공정과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야만 인용이든, 기각이든 국론 분열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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