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쯤 화원에 고급스런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인테리어와 집기까지 허투루 쓴 게 없었지만 청결한 화장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핸드워시와 핸드크림은 여느 특급호텔 화장실에 뒤지지 않았다. 화장실이 이 정도니 매장과 주변 환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떤 장소를 평가할 때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주목하기 마련. 그렇다면 손님이 들어갈 일도 없고 보기도 쉽지 않은 주방은 어떨까.
영화 속 음식을 탐색한 책을 쓸 정도로 음식에 관심이 많지만, 식당을 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시중에 산재한 식당 운영에 관한 숱한 책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건 이 때문. 그런데 보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책, '식당 운영의 신'이다. 주방이 식당 운영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모두가 메뉴와 SNS 마케팅과 고객관리를 앞세울 때, 오직 주방만 밀어붙이는 저자 민강현의 생각이 궁금했다.
식당산업은 여전히 노동집약적 성격을 지닌다. 노동인권 향상에 따라 인건비는 상승하고 직원은 힘든 일을 기피하며 안전의식은 높아진 시대. 세상이 달라졌고 시민의식도 변했으며, 이에 따라 음식문화는 도시생활을 이루는 필수 트렌드가 되었다. 과연 망하지 않고 식당을 운영하는 노하우가 있을까?
5장으로 구성된 책은 각장마다 총론으로 큰 틀을 보여주고, 각론을 통해 목표를 자극한 다음 세부실천방안으로 현실에 적용하도록 친절하게 꾸몄다. 예컨대 1장에선 주방의 중요성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강조하며, 2장에선 주방중심의 인테리어를 펼치면서 세부 파트까지 꼼꼼히 다룬다. 집기관리를 다룬 3장에선 주방에서 사용하는 집기의 제원과 매뉴얼은 물론이고 구입요령과 주방도구 응급조치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데, 25년 간 24개 식당을 개업한, 즉 가장 최근까지 직접 식당을 운영해본 사람만의 노하우를 풀어놓는다.
저자는 식당의 성패는 주방에서 갈린다고 말한다. 주방은 안전과 청결과 효율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이 같은 원칙이 잘 지켜질 때 직원과 손님과 업주가 모두 행복하며 가게가 번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홀은 포스와 키오스크와 태블릿으로 변화일로를 걷는데 주방은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 주방설비의 자동화가 식기세척과 착즙과 재료절단 수준을 넘기 힘든 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정성'이라는 기본 개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반대편에서 기계화 자동화 분업화로 표준화를 이룬 패스트푸드 산업조차도 말이다. 20년 전의 방법과 기술로는 주방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
각장마다 꼭지마다 안전과 청결과 효율을 강조하지만, 커다란 돔처럼 책 전체를 둘러싼 바탕은 시대에 맞는 노동환경개선이다. 말하자면 식당의 생명은 주방이고,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 곧 음식의 품질을 좌우하며 식당의 흥망성쇠가 달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듭 반복해서 언급하는 건 주방의 중요성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방증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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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운영의 신'을 선택한 것에 안도한 건 책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생각 때문이다. 모두가 고객 제일주의를 외치면서 손님만 바라보고 있을 때, 민강현은 주방에서 땀 흘리는 직원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결국 시스템은 손님보다 우리가 편하기 위해 만든다. 더 효율적인 식당 운영을 위해선 직원들의 업무환경이 나아지는 것이 1순위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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