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편파·졸속 대통령 탄핵심판, 스스로 존재 이유 허무는 헌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를 향해 현직 지검장이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 지검장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 재판 당시) 일본 재판부는 안 의사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할 때까지 최후 진술 기회를 줬고, 안 의사는 이토를 암살(暗殺)한 이유를 진술했다'고 말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이 윤 대통령의 3분 발언 기회 요청을 묵살(默殺)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시작부터 속도에 집착했다. 일방적으로 5회나 변론 기일을 일괄 지정하고, 매주 두 차례씩 변론 기일을 잡았다.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34명 중 8명만 채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검증하자는 요구도 거부했다. 이미 답을 정해 놨으니 증인도 부를 필요 없고, 발언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국회 측이 당초 '내란 혐의'를 주 내용으로 윤 대통령을 탄핵소추해 놓고 탄핵심판에서 '내란 혐의를 철회하겠다'고 밝혔음에도 헌재는 사건을 각하(却下)하지 않았다. '내란 혐의 철회 요청'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철회 요청'을 받아들이자니 국회 탄핵소추 의결을 다시 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 같고, '철회 요청'을 거부하자니 심리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을 우려한 것이라고 본다. 소추 쟁점도 특정하지 않은 채 재판 속도만 올린 것이다.

헌재의 모든 결정은 단심(單審)이다. 그런 만큼 신중하고 공평무사하게, 한 치의 흠결도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물며 대통령 탄핵심판은 일개 법률 판단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질서에 관한 재판이다. 이 때문에 지금 전 국민이 반반으로 갈라져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헌재는 속도에만 집중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 항소심 선고가 나오기 전에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답을 정해 놓고 형식적 일정만 채우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말이다. 헌재가 정파(政派)적 인식에 젖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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