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남정운] 모래밭 위 캠핑장

남정운 사회부 기자

남정운 사회부 기자
남정운 사회부 기자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취미는 '캠핑'이었다. 계절마다 수많은 캠핑장을 찾다 보니, 어느새 텐트 치기 좋은 곳과 나쁜 곳을 그 나름 가릴 수 있게 됐다.

가장 꺼려졌던 곳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 위였다. 신발과 텐트에 달라붙는 모래는 둘째치고, 텐트를 고정할 방법이 마땅찮았다. 모래에 꽂은 핀들은 텐트를 든든하게 잡아 주지 못했다. 천막도 이런데 누각은 오죽할까. 사상누각(沙上樓閣)의 위험성을 현실에서 처음 마주한 때였다.

공교롭게도, 15년 뒤 사상누각을 다시 떠올린 계기 또한 캠핑과 맞닿아 있다. '앞산 해맞이 캠핑장' 조성 사업을 깊게 취재하면서다.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지어진 캠핑장이나, 모래 위 불안하게 선 누각이나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대구 남구청과 조재구 남구청장에게도 장장 7년을 끌어 온 해당 사업이 공들여 지은 누각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그 누각 아래가 '모래밭'이라는 사실을 남구청이 몰랐을 리 없다. 사업 초반부터 비판과 우려가 끊이질 않았다. 부지가 앞산순환로에 접한 탓에 방문객의 차량 소음 피해가 예상됐고, 산림 훼손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캠핑장 시설 상당수가 현행법을 위반한 채 지어졌으며, 구청 내부에서도 이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는 사실 역시 점차 드러났다. 결국 캠핑장은 지난 2023년 6월 완공되고도 지금껏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남구청의 그릇된 뚝심은 꺾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남구청은 돌연 기자회견을 열어 '개장 강행'을 선언했다. 법이 잘못됐으니 직접 고치겠다며, 그 전까진 어쨌건 위법인 캠핑장도 임시로 연다는 것이다.

당시 남구청은 '기초지자체가 어떻게 법률을 개정하냐'는 질문에 함구했고, 직원 처벌 우려에 대해선 "모두가 감수하기로 했다"며 일축했다. 굴러서라도 모래밭을 벗어나는 지혜 대신, 모래밭을 더욱 강하게 딛고 서는 무리수를 던진 셈이다.

그럴수록 몸은 모래 속으로 파묻히기 마련이다. 위법 행위에 동조할 수 없었던 남구의회는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처벌도 감수하겠다던 말이 무색하게 구청 내부에서 이견이 나왔다.

결국 남구청은 캠핑장 개장을 포기한 눈치다. 최근 매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남구청은 캠핑장을 '숲속책쉼터'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대구시에 공원 조성 계획 변경을 요청하는 등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구청장 공약 사업에 투입된 예산 80억원과 막대한 행정력이 '매몰비용'으로 쓰이게 됐다. 용도 변경 과정서 추가 예산 투입도 불가피할 테다. 조 구청장은 기자회견 당시 "결과적으로 실수를 범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 숙였지만, 직후 밝힌 결단이 또 다른 혼선을 빚었다.

몸에 모래가 잔뜩 묻으면, 옷을 갈아입기 전 모래를 먼저 터는 게 순리다. 마찬가지로 새 대안 제시보다 성찰과 책임 인정이 우선이다. 조 구청장과 남구청은 그간 사업이 표류한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그 난맥상이 자신들의 거듭된 고집에서 비롯된 점을 먼저 시인해야 한다. 오래 기다린 주민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한참 늦은 마당에 이제 와 대안을 서둘러 찾을 이유도 없다. 남구청이 자의적으로 택할 게 아니라, 주민 의견을 따라 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사업 과정도 투명히 공개해 깔끔한 마무리를 추구해야 한다.

물론 일이 늘고 어려워지겠지만, 피할 순 없다. 이젠 오판한 대가를 치를 차례다. 원래 모래밭 캠핑은 시작할 때보다 정리할 때가 더 번거로운 법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