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되었다. 초기에는 계엄 선포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탄핵 찬성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런데 야당의 탄핵소추에 이어 현직 대통령을 재임 중 체포하는 상황에 이르자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광화문에서 울리기 시작한 탄핵 반대 목소리가 지방으로 확산하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카오스 상태로 접어들었다.
헌법재판소가 뭐에 쫓기듯 심리를 졸속으로 강행하면서 어떤 결정이 나든 불복 가능성이 점점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이러다간 1980년 '서울의 봄'을 방불케 하는 2025년 판 잔인한 '3월의 봄'이 폭발하지나 않을지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노무현·박근혜 사례에 이어 벌써 세 번째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 소추당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박근혜의 경우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재가 파면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여야 합의 하에 6공화국 헌법이 제정된 이래 취임한 대통령은 모두 8명이다. 이 중 두 명(노태우·이명박)은 범법자가 되어 쇠고랑을 찼고, 노무현은 극단적 선택, 박근혜는 탄핵 후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윤석열은 재임 중 탄핵소추에 이어 체포되는 수모를 당했다. 현재까지 무탈한 사례는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세 명뿐이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하는 순간부터 감옥 갈 준비를 하거나, 탄핵을 각오하거나, 부엉이바위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하는, 팔자 더러운 사람이나 기웃거리는 관직이 되고 말았다.
대체 이 나라 대통령이 연속으로 기구한 운명을 맞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스템을 작동하는 사람의 문제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한국 근현대사를 지정학과 국제 정치학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으로는 세 가지 모두가 응축된 결과물로 해석된다.
◆6공화국 헌법의 업보
6공 헌법은 군부 권위주의 통치 청산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대통령 권력은 크게 축소하고 국회 권한은 대폭 강화했다. 국회에는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부여했지만,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없앤 것이 그 증거다. 특정 정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장악하여 악법을 양산해도 이를 막을 수단은 헌법 제53조 2항에 의거한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뿐이다.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는 이승만 45건, 노태우 7건, 노무현 6건(고건 대행 2건), 이명박 1건, 박근혜 2건 등이었다. 반면에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 이래 탄핵 소추되기 전까지 총 25건으로 기록됐다. 거부권은 대부분 여소야대 때 행사되었다(전형철, '한국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에 관한 연구', 고려대 석사학위 논문, 2004).
특정 정당이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하면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거나 제멋대로 개헌을 해도 속수무책이다.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여 공공의 안녕질서가 현저한 위협을 받을 때 헌법 제77조에 의한 비상계엄 외에 대통령이 사용할 법적 수단은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윤 대통령 탄핵·체포 정국은 6공 헌법이 낳은 업보다.
6공 헌법의 또 하나 특징은 장기 집권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다 보니 국회의원 총선,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주기와 어긋나 정치적 불안정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 운 나쁜 대통령은 취임 초에 총선이 걸린다. 이때 집권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임기 초반부터 레임덕 현상에 빠져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만다. 누가 당선되든 '6공 헌법'의 저주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다.
게다가 대통령 임기가 단임이다 보니 재임 중 성과를 내기 위해 전임 정부의 정책은 모두 폐기하고 자기가 수립한 설익은 정책을 무리하게 남발한다. 이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행정 실험이 반복된다. 그 결과 대한민국호는 미래를 향해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인볼루션(involution) 현상에 처하고 말았다.
◆직업적 좌익 혁명가의 국회 진출
사람의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자신들의 대표로 구성되는 집단이다. 그래서 '민의(民意)의 전당'으로 표현된다. 영국의 처칠 수상 말처럼 지구상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 것이 부동의 진리다. 그렇다면 한국 유권자들은 어떤 수준의 정치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했을까?
지난 2023년 7월 경실련은 현역 국회의원 전과 경력조사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21대 국회의원 283명 중 전과자는 94명(33.2%). 이 중 민주화운동 혹은 노동운동 관련자가 47명이었다. 21대 국회의원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의원이 반정부·반국가 활동, 자본주의 시장경제 파괴 활동을 하다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반국가 사범이었다는 뜻이다. 22대 국회의원의 사례도 21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자신들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민주화 운동가, 노동운동가로 유권자를 속이고 입법부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마음껏 파괴하는 법안을 폭포수처럼 쏟아내 대한민국 파괴에 앞장섰다.
나치의 준동으로 참화를 겪은 독일은 헌법수호청을 만들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세력을 감시하고, 독일 기본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엄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반국가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떤 형태의 공직에도 진출하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아무리 심각한 반국가·반체제 행위를 해도 공직 진출에 제약받지 않는다. 제약은커녕 그런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방식이 극악무도할수록 영예로운 훈장으로 예우한다. 선거 시즌만 되면 여야가 경쟁적으로 반국가·반체제 전과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란 이름으로 영입하여 비례대표나 공천을 제공한다.
법적 허점을 뚫고 직업적 좌익 혁명가들이 요직을 장악하여 이 나라는 사회 전 분야가 불그죽죽한 기운에 빠져들고 말았다. 독일 헌법수호청 기준으로 볼 때 이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국가 자살 행위다. 직업적 좌익 혁명가들이 국회 진출을 선호하는 이유는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혀놓지 않았는가.
"우리가 의회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무기고에 들어가 민주주의의 무기를 우리 것으로 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국철 무료승차권과 식사를 제공할 만큼 어리석다 해도 우리가 알 바 아니다. 60~70명의 선동가나 조직원을 의회로 들여보내면 국가가 우리 투쟁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고 자금을 마련해주게 될 것이다."
◆미중 신냉전과 대통령 탄핵
마지막 요인은 한국 대통령의 탄핵과 미·중 신냉전의 연관 관계를 직시해야 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2049년까지 미국을 꺾고 세계 패권 질서를 장악하여 '중국몽'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몽이란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중국의 책봉을 받고 조공을 바치는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중국공산당의 선언이다. 저들은 이것을 중국 중심의 신천하 질서라고 표현한다.
미국 패권주의의 기본 패러다임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신장, 시장경제와 교류 통상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에 중국몽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전 세계에 강요하기 위한 작업이다. 서방 세계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중국몽'이 아니라 '중국 악몽'(Chinese Nightmare)이다.
미국은 이처럼 위험한 괴물로 돌변한 중국을 글로벌 무대에서 퇴출시키기로 작정했다. 이것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미중 신냉전의 핵심 본질이다. 미중 신냉전 시대에 핵심 지역으로 떠오른 곳이 한국·대만이다. 한국과 대만은 중국의 첨단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반도체 연구생산기지이자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가로막는 결정적 진지이자 불침 항모다. 오바마·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번영의 린치핀(핵심축)"이라고 표현했다.
중국공산당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대만 통일이다. 이를 무력으로 실행할 경우 미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자신들의 행위에 결정적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친중·반미·반일 정권이 들어서야 중국이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박근혜·윤석열처럼 한미일 해양 삼각동맹을 중시하는 정권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친중 정권으로 바꾸는 것이 중국의 사활적 이익이 된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7월 8일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이 발끈하여 전방위적 보복을 개시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촛불시위가 폭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문재인 정부 시절 크게 약화됐던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관계를 정상화했다. 미·중 사이에서 고민하던 여러 나라는 윤 대통령의 미국 중시 노선에 자신감 얻어 이 노선을 따랐다. 중국공산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친미·반중 외교 노선에 어떤 식으로든 강한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2023년 6월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승리, 중국 패배에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 중국 패배에 배팅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내정간섭 발언을 했다. 이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정치적 생명을 끊어버리겠다는 직설적 경고였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후 국회는 윤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데 이어 체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작금의 대통령 탄핵 사태는 이처럼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 글로벌 체제 전쟁이다.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이해해야 대책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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