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은 22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싸우고 있다. 추모공원 명칭 변경과 희생자 수목장 조성 문제는 여전히 갈등 속에 묻혀 있다. 참사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유족들은 더욱 절박하게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화재로 모두 192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참사가 발생한 지 22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딸을 잃은 황명애(68)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원회'(대책위) 사무국장은 해묵은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들의 무관심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황 씨는 참사 당시 갓 20살이었던 한상임 씨의 어머니다. 황 씨는 한 씨에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라고 했다. 딸이 고생할까 걱정돼서다. 딸은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학교 입학 전에 용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화를 당했다.
한 씨의 비극은 참사 이후에도 이어졌다. 고열에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희생자로 인정받으려면 유족이 직접 자신의 가족이 지하철에 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사고 현장을 수차례 헤집고 다닌 뒤에야 다 타버린 지하철 안에서 딸의 소지품 몇 개를 찾았다. 결국 희생자로 인정받았지만, 황 씨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유족들이 모인 대책위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2009년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게 된 황 씨는 제대로 된 추모 시설을 만드는 데 열을 올렸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유족들은 추모의 의미를 담고자 팔공산집단시설지구 내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안전테마파크)의 명칭을 추모 공원으로 바꾸자고 대구시에 요구했다. 하지만 팔공산 인근 상인들의 반대에 번번이 막혔다.
지난해 4월에는 시를 상대로 '수목장지 사용권한 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안전테마파크 내 조경 시설에 나무를 심어 희생자 유골을 수목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시와의 이면 합의가 2005년에 있었다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을 청구를 기각했다.
황 씨는 "별다른 성과 없이 흐르는 시간에 초조하다"고 했다. 그동안 힘을 보탰던 유족 일부는 세상을 떠났고, 참사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제대로 된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참사 유가족 2세들이 대책위 활동에 참여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더라도 많은 대구 시민들이 잊지 않고 희생자들을 추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머지않아 찾아 뵙겠다" 한동훈 복귀설에… 與 "성급한 판단" 분란 조짐
[단독] 문형배 거짓 논란…헌재, 증인 질문지 선제출 압박했다
국힘 "황현필은 6·25가 미국 시나리오대로 일어났다고 한 사람"
신지호 "한동훈, 달걀 세례 받더라도 당원과 진솔한 회한 나눌 것"
[지방대 위기극복 릴레이 기고]대구사이버대 이근용 총장…원격대학 차별, 시대적 역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