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태진] 악수(握手)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반가촌(班家村)의 인사법은 배례(拜禮)다. 길에서 만난 게 아니라면 동년배들도 맞절로 인사를 대신한다. 도시에서 이렇게 하면 "별나다"는 말을 듣겠지만 반가촌에서 고개만 까딱했다면 별스럽게 여기는 표정을 보게 될지 모른다.

조선의 인사법은 1883년 미국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9월 18일 민영익이 이끈 조선 보빙사(報聘使)는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의 국서를 전하기에 앞서 큰절을 했다. 악수(握手)로 인사를 대체하는 건 19세기 말부터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고종도 1889년 주미 공사로 있다 귀국한 박정양에게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 악수로 예를 삼았는지 물었다.

요즘의 우리는 악수를 하면서 '안녕'과 '근황'을 묻는 메시지를 덧붙인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 '초급 한국어'에서 주인공은 '안녕하세요'를 어떻게 번역할지 한참 고민하다 'Are you in peace?'라고 가르치는데 아랍어 인사말인 '앗살라말라이쿰(당신 위에 평화)'처럼 평온을 바라는 의미로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메시지가 없더라도 손동작은 감정 전달에 효율적이다. 손으로 어깨를 토닥이거나 포옹하는 행위는 몇 마디 말보다 우호적 신호를 크게 전한다. 문상(問喪)을 가 보면 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라는 위로의 말도 있지만, 아무 말 없이 손만 잡아도 상주의 눈물샘은 폭발한다.

보건(保健) 측면에서 악수는 권장할 만한 인사법이 아니다. 세균 전염 통로가 손인 탓이다. 낙선하면 건강이 상하기에 세균 전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선거운동이다. 출마 경험자들은 악수의 효능을 낮잡아 보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지만 유권자에게 내민 손이 순순히 잡히면 승기(勝機)를 잡은 것이고, 유권자가 악수를 받지 않으면 "내 표가 아닌" 게 확실하다는 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변론기일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도 안 쳐 주고, 악수도 거부했다"며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은 것은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승기를 잡지 못하고 내 편이 아닌 걸 확인한 셈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 하지만 감정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다. 상대를 멀리하는 합리적 혐오 논리도 잘 만든다. 악수 거부, 허투루 볼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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