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조향래] 아파트 회한(悔恨)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아파트는 일제강점기 때 서울 서대문구의 '충정아파트'였다. 일본인이 임대 목적으로 지었는데,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 숙소와 사무실로 활용되기도 했다. 광복 후 우리 기술로 처음 지은 아파트는 중앙산업이 사원주택용으로 지은 '종암아파트'이다. 당시로서는 최신식인 연탄보일러와 혁신적인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었다.

최초의 아파트 단지는 서울의 '마포아파트'였다. 1964년 제3공화국 정부가 근대화의 상징으로 완공한 6층 높이 10개 동의 아파트로 임대 후 분양 전환을 했는데, 적잖은 입주금과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현대식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마포아파트'는 최초의 재건축 아파트로 부활(復活)하는 전례도 남겼다. 대구의 최고령 아파트였던 '동인시영아파트'도 재건축을 통해 몇 년 전 신천 변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주거 공간인 아파트만 재건축이 있는 게 아니다. 아파트 노래도 새로 태어난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1980년대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건설 붐을 타고 등장했다. 급성장 시대의 새로운 주거 문화를 배경(背景)으로 탄생한 히트곡이다. 그 후 40년 만에 '재건축'한 김민진의 노래 '아파트'는 아파트 때문에 울고 웃는 '아파트공화국'의 별의별 상황들을 코믹하게 그렸다.

재건축 아파트 노래답게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후렴구 '아파트 아파트~'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가수 로제(ROSE)의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윤수일의 원조 '아파트'를 초월하는 국제화로 빌보드 차트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가사 대부분이 영어이지만, 팝송에 익숙한 중장년층도 따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재건축 아파트 노래의 흥행(興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고공행진하던 아파트 경기 열풍에 앞다투어 분양받은 아파트 가격의 급전직하로 매매도 전세도 이루어지지 않아 너나없이 속 골병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가 다가온 신규 아파트의 막대금을 치르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도 허다하다. 꽁꽁 얼어붙은 서민경제에 한숨 쉬기도 벅찬데, 탄핵 정국에 휘말린 정치권은 정권 방어와 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되어 날마다 해외 토픽감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아파트 노래인들 살갑게 들리겠는가.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joen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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