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대구 북구 연암산 상공에서 본 칠성동과 침산동. 드넓은 신천 너머로 아스라이 자리한 단층 건물과 거대한 공장들. 시원스레 뻗은 침산로 왼편에는 제일모직, 오른쪽으로는 대한방직, 삼호방직 공장이 마치 섬유도시를 과시하듯 널찍하게 터를 잡았습니다.
오봉산 아래 침산국(초)교 옆으로는 선학알미늄, 무림제지 공장이 북침산네거리를 꿰차고, 경상감영 터에 더부살이 중인 도청이 이사 올 산격동엔 돈이 모자라 짓다 만 본관 건물만 덩그렇게 섰습니다. 멀리 중앙통(로)에서 제일모직 옆을 지나 곧장 신 도청사로 내달릴 도청교(1968년 개통)와 중앙대로(1971년 개통·전 통일로)는 아직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공장이 밀집한 이곳은 대구 최초 제1공업지역.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이 일대가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 신천과 대구역을 낀 터라 용수, 물류 등 공장을 돌리는데 이만한 입지가 없었습니다. 해방 전후에는 섬유·기계·고무·염색 등 크고 작은 공장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97개나 들어섰답니다.
대구역 뒤뜰격인 칠성동은 기업의 산실. 역 부근에는 김성곤이 삼공유지회사(1939년 설립·쌍용그룹 모태)를, 시민운동장 맞은편 침산로변엔 김수근이 대성산업공사(1947·현 대성그룹 모태 )· 이해준이 삼립자동차공업사(1954·현 에스엘(주))를, 그 왼편 너른 들판에는 이병철이 국내 최초, 최대 소모사(梳毛絲)공장인 제일모직(1954·현 삼성그룹 모태)을 보란 듯이 일으켰습니다.
또 김추호의 아세아산업공사(1945년·현 아세아텍), 이태희의 조선기업사(1945· 현 조일알미늄), 최세정의 화랑고무(1950·현 (주)화랑), 김건기의 평화고무공업사(1950·현 평화산업), 손기창의 경창공업사(1961·현 경창산업) 등 지역 대표 기업으로 우뚝 선 이들 모두 이곳 칠성동에서 시작했습니다. 칠성동은 기업가들에게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저 무렵 시대정신은 '근대화', '재건'를 통한 산업화. 어서 공장을 돌려 집집마다 대여섯씩 불어나는 국민들을 먹여 살릴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서울의 구로공단, 부산의 사상공단, 대구는 제1공단이 그 명(命)을 받았습니다. 저 넓은 섬유공장은 주경야독 누님들이, 철공장·연탄공장은 새까맣게 분칠한 형님들이 도맡았습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 밤낮을 몰랐습니다. 대한민국 산업화는 이곳에서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느덧 61년. 칠성동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시커먼 탄가루가 질퍽이던 거리, 시끌하던 공장지대가 싹 아파트 숲으로 변했습니다. 공장은 모두 둥지를 떠나 더 넓은 곳으로, 유일한 흔적 제일모직 터가 이곳이 제1공업단지였음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제일모직은 점점 커서 글로벌 삼성그룹으로, 세계의 '별'로 우뚝 섰습니다. 그 제일모직 터는 이제 삼성창조캠퍼스로, 벤처 청년들이 제2의 별을 찾아 또 밤잠을 설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정부로부터 '도심융합특구'로 지정돼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대구의 도심융합특구는 산업·주거·문화가 어우러진 '대구형 판교 테크노벨리'. 도청 터(현 시청 별관), 경북대, 삼성창조캠퍼스가 협업해 신 성장 거점으로 거듭날 예정입니다. 핵심 콘텐츠는 도심항공교통 (UAM), 첨단 로봇, 지능형 반도체. 산업화 출발지에서 다시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비상할 그날이 머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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