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황영은] '느좋'은 '칠가이'들의 언어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선생님, 오늘 옷 느좋!", "점메추 해주세요!", "샘, 오늘의 TMI는?"

위의 글은 모두 필자가 제자들에게서 들었던 말들이다. 늘 그 뜻을 짐작할 수 없어서 무슨 얘기냐고 물을 때마다 대놓고 아재 취급을 당한다. 'TMI'는 유행한 지 한참 되어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이란 것쯤은 안다. 새롭게 등장한 줄임말도 이제는 좀 정답에 가깝도록 유추해 볼 법도 하거늘, 매번 처음 보는 수학 공식처럼 난해한 그 언어들의 해석이 참으로 난감하다. 느낌 좋다, 점심 메뉴 추천의 줄임말로서 '느좋, 점메추'란 사실을 어찌 한순간에 맞출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청소년 작가들의 소설창작 첨삭 지도를 하다 보면 비슷한 순간을 맞닥뜨리고 만다. 어디서 들어본 말인 것 같기도 한데 의미가 알쏭달쏭한 단어, 아예 외계어처럼 모양도 뜻도 예상할 수조차 없는 어휘들의 등장은 괜스레 나를 쫄보 선생으로 추락시켜 버리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신조어를 어떻게 직면해야 좋을까.

소설을 가르칠 때 시대착오적인 대사나 장면을 항상 경계하라고 언급한다. 소설은 지금, 딱, 현시점의 시류를 반영하는 문학의 한 장르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급변하는 유행어를 식빵에 녹아드는 버터처럼 자기의 문화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아이들의 시류일 텐데, 난 결국 소설의 격을 떨어뜨린다면서 신조어 사용을 자제하라고 단호하게 말해 버렸다. 돌아오는 건 아재에 이어 꼰대까지 짊어진 현실.

언어는 계속 변한다. 시대와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며 없어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말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인류가 문자 언어를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반복해 왔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필터링을 거쳐 사전에 등재된 말은 표준어로 승격하지만 이 신조어는 떠돌다가 사라지거나 영원히 비표준어로 남게 된다(물론 빈도수나 정착된 의미를 가진 단어는 연구와 심의를 거쳐 표준어로 등록될 수도 있다).

돌이켜 보건대, 수많은 신조어가 나타났다가 사라져도 우리의 한글이 파괴되거나 변질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대중가요처럼 한바퀴 휩쓸면서 젊은 세대들의 공감과 유희를 형성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했던 게 아닐까 싶다. 유연하게 살아 움직이는, 재미있고 트렌디한 언어 말이다. '말세다, 말세!'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신조어를 배척만 하다가는 세대 양극화의 불씨에 휘발유만 들이붓는 꼴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의 신조어 사용에 한없이 관대해질 생각이다. 물론 소설 속에서 흐름을 깨도록 남발한다면 어쩔 수 없이 걸고넘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요즘 '칠 가이'란 신어조가 유행인데, '차분하다, 편안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칠(Chill)'과 합성해,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도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분위기를 전달하는 캐릭터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아재와 꼰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이제 '느좋'은 '칠 가이'들의 언어를 버터처럼 내 안에 녹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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