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도체 특별법 무산에 미국 우선주의까지 K반도체 첩첩산중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메모리 제조까지 빼앗기나
52시간 근로제에 발목 첨단산업 '골든타임' 놓치나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강국' 한국이 글로벌 시장 격변기를 맞아 도전에 직면했다. 인공지능(AI)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한국 업계에 가해지는 압박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첨단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가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산업으로 영향력이 큰 것은 물론 국가 안보로 이어지는 핵심 전략 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에 자극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통제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심화로 막대한 자본 투입과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와 보조금 지급 지연 등 자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반도체를 겨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 반도체 산업의 상징이었지만 급격한 쇠퇴를 맞은 인텔을 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를 압박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위기에 빠진 인텔을 TSMC를 활용해 되살리고 3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 기술까지 확보한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TSMC가 트럼프 행정부 압박에 따라 '인텔 구하기'에 나선다면 출자·공장 인수보다는 기술 협력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파운드리 사업 확대를 통한 실적 개선이 절실한 삼성전자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27년간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는 현재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자국 내에 생산시설을 불러들이겠다는 의지에 따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메모리 생산공장 건설까지 요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압력은 사실상 메모리 제품을 향한 것"이라며 "삼성전자에 메모리 제조시설을 지으라고 압박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산업 주요국 지원금 현황. 한국경제인협회제공(단위: 억달러)
반도체 산업 주요국 지원금 현황. 한국경제인협회제공(단위: 억달러)

◆국내 지원 강화 서둘러야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은 반도체 산업에 수십조원 규모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당시 칩스법을 제정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내준 반도체 생산국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85억달러 규모의 보조금 투입 계획을 수립했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SMIC에 2억7천만달러 지원을 결정하고 정부가 대주주로 참여하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 부흥을 목적으로 63억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내놨다.

한경협은 "급격한 기술발전과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안보는 물론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짚었다.

하지만 52시간 근로제 예외에 대한 논란으로 반도체 특별법 통과가 불발되면서 업계에서는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 관련 논의도 중요하지만 산업 지원책이 포함된 반도체 특별법 자체가 계속 지연되는 점이 아쉽다"며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책적 지원이 모두 법에 근거해 이뤄지는 만큼 법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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