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암스테르담](https://www.imaeil.com/photos/2025/02/19/2025021913231322621_l.jpg)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연기하는 선우는 보스의 여자를 마음에 품은 사실이 발각되어 위험에 처한다. 보스의 하수인이 찾아와 "사과해라,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잘못했음. 이 네 마디다, 네 마디만 하면 적어도 끔찍한 일은 피할 수 있다."고 경고해도 끝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목숨을 걸고 "나한테 왜 그랬느냐?"고 묻지만,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수컷의 자존심.
이언 매큐언에게 부커상을 안겨준 '암스테르담'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두 친구 클라이브 린리와 버넌 핼리데이,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랑한 여자 몰리를 둘러싼 수컷들의 역학관계에 관한 괴이한 보고서이다. 200쪽에 불과한 소설에서 작가는 무너지는 우정과 지성인의 파멸과 한 세대의 소멸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세계적인 작곡가 클라이브는 밀레니엄 기념 음악회에 연주할 교향곡 작곡의 막바지 작업 중이고,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은 사내 입지를 지키면서 발행부수를 획기적으로 높일 방안에 고심 중인데, 그들 앞에 던져진(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사진 한 장은 둘의 오랜 우정을 시험대 위로 올린다.
매큐언의 다른 작품 '칠드런 액트'에도 드러나듯이 인간의 윤리적 선택이라는 난제는 개인의 영달과 인간의 도리와 사내들의 자존심 사이를 유영하더니 둘 모두를 추악한 파멸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그러니까 절체절명인 상황에 등장한 총리 후보자의 지혜로운 아내 로즈는 (몰리 혼자 구정물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상황을) 시의적절한 가족애로 기민하게 돌파하는데, 오물을 잔뜩 묻히고 걸어온 클라이브와 버넌, 두 남자에게서 품위와 교양과 상식이 실종되는 시점도 이때부터다. 그리하여 총리 지명자 가머니는 최악의 스캔들에서 기사회생하고, 다른 한쪽은 가머니의 아내 로즈에 의해 "협잡꾼의 정신과 벼룩만한 윤리 수준을 가진 사람"으로 추락한다. 그렇다! 버넌은 '협잡꾼'과 '벼룩'으로 영원히 봉인된다.
작가는 '암스테르담'을 낭만의 시대와 작별 중인 어떤 세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책 23쪽에서 클라이브의 독백이 말하는 바, 그들은 "(전략) 전후의 사회복지국가에서 태어나 나라가 주는 젖과 꿀을 먹고 자라고, 부모들이 이룬 소박한 부에 얹혀살다가 곧장 완전고용의 시대에 돌입한 세대. 새로운 대학들, 화사한 보급판 책들, 로큰롤의 전성기, 적당할 만큼의 이상을 추구"했던 세대이다. 그들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가 부서지고 정부가 갑자기 젖을 떼며 잔소리를 시작했을 때 이미 안전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는 것. 그런 안락함 속에서 소위 상류그룹에 속한 이들만이 품을 수 있는 과도한 권력욕과 명예욕과 성적욕망이 뒤엉킬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도시가 암스테르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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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의 장례식으로 시작하고 클라이브와 버넌의 추도식으로 끝나는 소설에서 이언 매큐언은 인간의 탐욕과 시기와 순간의 판단착오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똑똑히 증명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클라이브와 버넌은 서로에게 한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했을 따름이었다. 하여 나는 씁쓸한 미소를 날리며 이렇게 말하리라. 우정은 괴이하게 뒤틀렸을지언정 그들 사이의 신뢰는 영원하였다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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