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고베 재일동포 역사 생활 박물관 건립 후원을 위한 사진전이 열렸다. 이 사진전을 함께 기획한 ㈜공감씨즈,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 (사)더나은세상을위한공감 등은 24년 전 대구 쪽방상담소에서 맺은 연으로 꾸준히 제도권 밖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펼쳐왔다.
사회적 기업인 ㈜공감씨즈의 허영철 대표, 통일부 지정 대구 북한이탈주민지역적응센터인 대구하나센터의 조재희 센터장, 대구쪽방상담소의 장민철 소장. 지난 18일 대구 중구 공감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세 단체의 대표를 만나 24년의 인연과 NGO 활동들을 톺아봤다.
-'고베 재일동포 역사 생활 박물관' 후원을 위한 사진전을 열었다. 이 사진전은 공감씨즈, 대구하나센터, 대구쪽방상담소가 함께 만들었던데.
▶허영철(이하 허): 고베 나가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다민족 거주 지역 중 하나다. 이곳에 사는 재일동포들을 지원하고, 한국 문화를 계승해온 단체가 '고베코리아교육문화센터'다. 이 센터가 '재일동포 역사 생활 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하는데 후원행사의 일환으로 세 기관이 힘을 보태 사진전을 열었다. 고려인이나 제일동포나 다 자신이 원해서 이주해 간 분들이 아니지 않나. 그들과 그들의 조국인 한국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세 분 모두 2001년 대구쪽방상담소의 시작과 함께 만나게 됐다고 들었다. 벌써 24년째다.
▶조재희(이하 조): 24년이라니, 지긋지긋하다.(웃음) 2001년 2월 대구에 쪽방상담소가 개소했는데 난 그 창립 멤버다. 대구에 쪽방상담소가 만들어진다길래 실태조사를 위해 퇴근 후 쪽방을 돌아다니는 봉사를 하게 됐다. 봉사를 다녀보니 쪽방촌이 너무 열악했다. 현장에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톨릭 신자여서 그런지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민철(이하 장): 개소 이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내가 입사했다. 당시 소장이던 목사님의 권유였고,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둔 때였다. 쪽방상담소는 새로 생기는 곳이라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조: 그해 12월에 쪽방상담소 실장님이 서울로 가시면서 공석이 생겼다. 실장직이다보니 연식이 돼보이는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허 대표님을 보니 제격이다 싶더라.(웃음) 그렇게 우리 세 명이 만나게 된 거다.
-그러다 허 대표님이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를 만들게 됐고 거기서 또 함께 하셨다.
▶허: 우연히 대구 지역에 정착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130명 정도 되는 걸 알았다. 이들의 정착을 도울 지원이 필요한데 집단의 수가 너무 적으니 지자체가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 상대로 한 지원은 이념적인 이유들로 기피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쪽방상담소에 있으면서 탈북자 관련 사업을 조금씩 하다가 2003년 6월에 북한이주민지원센터를 개소해 북한이주민을 위한 지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북한이주민지원센터'가 통일부가 만든 '하나센터'의 모델이 됐다던데.
▶조: 하나센터는 탈북민의 지역 적응을 돕는 센터다. 탈북민 거주지 적응 교육부터 취업 교육까지 종합적으로 실시한다. 이 하나센터가 대구의 북한이주민지원센터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허: 탈북자만 돕는 NGO가 전국에 대구밖에 없었다. 대구만 유일하게 NGO 단체를 만들다보니, 통일부가 하나센터를 만들 때 이 시스템을 참고하게 된 거다.
-소장직으로 있다가 10년 만에 자리를 넘겨주셨다. 탈북민의 사업을 그만하게 되신 건가.
▶허: 내 신념이 '(NGO의 경우) 조직의 대표를 10년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하면 마치 조직이 대표 한 사람을 위한 조직처럼 바뀐다. NGO는 공익적인 일을 하는 곳인데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빠져줘야 후배들도 리더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펼칠 기회가 생긴다. 그 신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은 북한이탈 청년의 정착과 취약계층을 돕고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인 공감씨즈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금의 30%를 사회에 환원한다. 탈북자는 한국 사회에서 정착이 힘들다. 근데 이들의 장점 중에 하나가 중국어를 잘 한다는 거다. 이 장점을 활용해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할 2013년에 '공감씨즈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거다.
-허 대표님이 계시던 자리에 이제 조재희 센터장과 장민철 소장님이 계신 건가.
▶장: 현재는 제가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이기도 한 쪽방상담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서비스 공백 상태에 놓인 쪽방 주민들에게 의료, 주거, 식사 등 기본적인 지원을 하는 중이다. 직업 교육도 실시한다. 쪽방이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많이 없어졌는데 쪽방 주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이 여인숙, 모텔 등으로 옮겨갔다. 이들을 찾고 살핀다.
조: 허 대표님이 만드신 북한이주민지원센터, 지금의 대구하나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탈북민이 50시간 정도의 규정된 교육을 받도록 센터에서 돕는다. 이후 6개월 동안은 취업 지원을 해드린다.

-24년 간 인연을 이어온 비결이 뭔가. 일을 같이 하다보면 의가 상할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조: 자주 싸우는 게 비결이다.(웃음) 농담이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고, 또 장 소장님이나 나나 허 대표님의 배턴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라 조언이나 의견을 구할 일이 많다. 반대로 허 대표님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그에 관한 생각들에 도움을 받으시는 것 같다.
허: 셋이서 자유롭게 의견 교류를 하다보면 마찰이 있을 때도 있다. 오히려 싸워야 건강한 조직이 된다. 구성원 간 의견을 듣고, 말하고 하는 것은 조직 발전에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 조직이라는 게 서열화 돼 있기 때문에 그런 의견 개진이 쉽지 않다.
-직접 리더가 돼보니 어떤가.
▶조: 허 대표님이 굉장히 선구자적이었다는 걸 센터장의 자리에 있으니 깨닫는다. 허 대표님이 센터장이셨을 때는 자꾸 일을 벌리셨다. 실무를 감당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하지?'라면서 의문을 품었다. 근데 리더가 돼보니 그런 사업을 적극적으로 따오셨던 대표님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NGO 단체니까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단체를 확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센터도, 쪽방상담소도, 공감씨즈도 없었을 거다. 이걸 이해하게 되니까 더 끈끈해지는 것도 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힘든 일도 있을 것 같다.
▶허: 지원이 줄면서 시민단체가 많이 위축됐다. 또 월드비전 같이 TV 광고하는 곳은 후원이 2배로 늘어난 반면 매달 시민들에게 1만원 정도씩 받는 방식으로 후원금을 마련하는 곳은 반으로 줄었다. 기업들도 다 자기 재단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부를 하지, NGO 단체에 기부를 잘 안 한다. 기업의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NGO의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장: 어떤 조직이든 자금이 없으면 힘들다. NGO 활동을 할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페이를 줘야 하는데 줄 인건비가 없다. 우리나라는 제도가 후원금 중에 20% 이상은 인건비로 못 쓰게 돼 있다. 순수하게 사업비로만 쓰게 한다.
사업만 늘면 뭐하나. 사업을 진행할 실무진이 없다. 전통적으로 NGO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건비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원봉사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봉급도 주지 못하는 단체에는 청년들이 안 온다.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가치있는 일을 하겠다는 뜻을 품은 유능한 청년들이 분명 있다. 그들을 다 놓치는 거다. 그러면 단체는 지속 가능성이 점점 사라진다. 유럽이나 미국은 안 그렇다. 인건비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베 재일교포 사진전 외에 세 분이서 또 도모하는 것들이 있나. 세 분이 그리는 미래가 궁금하다.
▶허: 우선 중국 단둥, 신의주, 백두산 투어를 같이 하려고 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고령화 사회와 관련해 펼쳐나가는 사업을 보고 배우려고 애쓰고 있다.공감씨즈 일본 현지 법인을 세울 계획이 있다.
장: 라오스 등 동남아에도 우리 동포들이 많다. 동남아로 헌옷을 보내고, 현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조: 쪽방상담소, 그 다음 북한이주민 지원, 그 다음이 공감씨즈가 하는 여행 사업은 사실 맥락이 있다. '떠나온 사람, 떠나는 사람'에 대한 일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키워드 안에서 계속 일을 해 나갈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허 대표님이나 장 소장님이 건강해서 오래 오래 옆에 계셨으면 좋겠다. 두 분 다 남 돌봄 일을 하느라 자기 돌봄 없이 살아온 분들이라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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