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물론하고 흥망성쇠를 면할 수는 없다. 로마도 결국은 멸망했다. 강성했던 나라가 어떻게 망하게 되는가. 국가는 자살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쇠망하지 않는다. 내란은 곧 국가의 자살행위이다. 우리 역사에서 내란으로 인해 나라가 망한 몇 가지 사례를 찾아 설명해보기로 한다.
◆고조선의 망국 원인
발해유역의 내몽골 적봉시 홍산에서 아시아의 문명이 태동하였다. 그것이 홍산문화이고 이를 계승 발전시킨 나라가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중국의 첫 국가인 하夏나라보다 약 200여 년 앞서 건국된 통일왕국이다. 2천여 년 간 유지되면서 중국 황하문명의 모태 역할을 하였다.
고조선의 삼족오 토템이 중국 용봉문화의 뿌리이고 고조선의 선가사상은 중국 유, 불, 도 사상의 원류가 되었다.
중국의 문화를 선도한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고조선,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2천여 년을 유지한 고조선 왕국은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가.
한무제의 공격을 중요한 이유로 들 수 있으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무제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기 위해 감옥에 갇혀 있는 전국의 죄수를 동원하여 공격을 개시했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조선은 내부반란으로 망한 사실을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이계의 재상 참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살해하고 와서 항복했다.(尼谿相參 乃使人殺朝鮮王右渠 來降)"
고조선은 지금의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였다. '이계상 참'은 고조선의 연방정부인 이계국의 재상 참이라는 사람을 가리킨다. 조선왕 우거는 한무제의 군대가 아닌 조선의 제후국인 이계의 재상 참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나 수천년을 이어온 뿌리 깊은 나라 조선은 왕이 살해되었다고 해서 쉽사리 망하지 않았다. 조선왕 우거의 대신 성기(成己)라는 인물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여 다시 한군을 공격했다.
정면승부로 승산이 나지 않자 당황한 한무제는 간첩을 들여보내 고조선 내부에 대한 이간책을 썼고 그 잔꾀에 말려든 고조선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에 관한 내막은 다음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조선왕 우거가 살해되었지만 왕험성이 함락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우거의 대신 성기가 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다시 한나라 관리들을 공격했다. 한나라의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강과 조선의 재상 노인의 아들 최를 시켜 그 백성들에게 고유하도록 하여 성기를 처형했다. 그래서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게 되었다.(王險城 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己又反 復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降 相路人之子最 告諭其民 誅成己 以故遂定朝鮮)"
성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싸웠던 의로운 인물이다. 이때 우거왕이 죽었더라도 조선의 정부와 국민이 합심 협력하여 한군을 몰아냈다면 나라를 지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첩을 들여보내 왕실과 백성들을 이간시킨 한무제의 야비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고조선 연방정부의 관료들은 적전 분열되었고 그들은 한무제의 앞잡이가 되어 끝내 조선의 대신 성기마저 살해함으로써 고조선은 결국 멸망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과 한나라의 싸움은 한무제가 전쟁 후 논공행상에서 전쟁에 참여한 한나라 장수들을 모조리 처벌한 것에서 보듯이 실패한 전쟁이었다.
우리는 고조선의 멸망은 내부의 분열과 혼란 즉 내란이 그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고구려의 망국 원인
고구려는 300만 대군을 동원한 수양제의 침략을 막아내고 중국 역사상 뛰어난 지도자 당태종의 공격을 물리친 당시 동북아시아 최대 강국이었다.
그런 고구려가 당고종이라는 보잘것 없는 지도자에 의해 하루아침에 힘없이 무너진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구이九夷가 2천여 년 동안 대화합의 시대를 열었던 고조선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동족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이때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나당연합군이 남북에서 협공을 가한 것을 고구려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내부분열 즉 내란에서 찾을 수 있다.
연개소문에게는 남생, 남건, 남산 세 아들이 있었다. 보장왕 25년 연개소문이 죽고 그 장자인 남생이 대신 막리지가 되었다. 처음 국정을 맡은 남생은 여러 성을 순시하러 나가면서 그의 아우 남건과 남산에게 조정에 머물며 국정을 대신 맡아보게 했다.
그런데 어떤 자가 두 아우에게 "남생이 두 아우가 자기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제거하려고 하니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또 남생에게는 "두 아우가 형이 돌아와 정권을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형을 막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이간질했다.
남생이 몰래 사람을 평양으로 보내 살펴보게 하니 두 아우가 그를 붙잡아 두고 왕의 명으로 남생을 불렀다. 남생이 감히 돌아오지 못하자 남건이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군사를 일으켜 남생을 공격했다.
남생이 달아나 국내성을 근거지로 하면서 그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했고 얼마 후 몰래 국내성을 빠져나온 남생은 당나라로 도망쳤다. 그 2년 후 보장왕 27년 2월 당 고종은 남생을 앞잡이로 내세워 고구려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고 9월에 평양성을 함락,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상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기록은 당의 공격보다 국내의 내부분열이 고구려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금까지 남생, 남건, 남산 삼형제를 이간시킨 세력이 누구인지 밝혀진 사실은 없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당나라의 간첩을 이용한 공작에 휘말려 고구려 정부 집권세력인 연남생 형제들 간의 자중지란 즉 내란이 발생하여 그것이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백제의 망국 원인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조 말미에 "백제의 강역이 신라, 발해, 말갈의 분할 한 바 되었다,(其地 已爲新羅渤海靺鞨所分)"라고 하였다. 발해국과 말갈은 중국 대륙에 있던 나라들이다. 백제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반도 서남쪽에 있던 나라라면 발해와 말갈이 어떻게 백제의 영토를 나누어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는 백제가 한반도 서남쪽에 있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발해, 말갈과 이웃한 발해유역의 강대한 나라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백제의 멸망과 관련하여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음탕한 세월을 보내다가 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의자왕은 음란과 향락을 일삼은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 삼천궁녀 이야기는 어느 시인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한 말이다.
의자왕은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해동의 증자로 일컬어졌고 신라의 40여 성을 함락시킬 정도의 뛰어난 전략가였다.
의자왕은 장군 윤충(允忠)을 보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도록 하여 성주 품석(品釋)과 그의 처자가 모두 항복했는데 윤충 장군은 그들을 살해하였다.
품석은 신라 김춘추의 사위였고 그 아내는 김춘추의 사랑하는 딸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춘추는 철천지한을 품게 되고 당나라의 원군을 끌어들여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백제의 도성을 공격하여 더 이상 버틸수 없게 되자 "의자왕이 드디어 태자 효와 함께 북쪽 변경으로 달았다.(遂與太子孝 走北鄙)"라고 말했고 의자왕의 최후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소정방열전에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백제의 대장 예식이 의자왕을 붙잡아와서 항복했다.(其大將禰植 又將義慈來降)" 이 기록에 따르면 의자왕은 백제의 대장 예식에 의해 체포되어 당나라에 항복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자왕이 체포되어 항복하는 바람에 활발히 진행되던 백제의 부흥운동은 결국 기세가 꺽였고 백제가 멸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백제의 대장 예식은 의자왕을 체포하여 당군에 항복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뒤에 중국에 들어가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다가 죽었다. 그때 만일 백제가 고구려와 협력하고 국가와 백성이 합심하여 싸웠더라면 역사의 물줄기는 달라졌을 수 있다.
이는 백제의 멸망도 내부반란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망국의 길로 치닫는 한국정치, 해법은 무엇인가
현재 한국의 혼란상은 1987년 체제인 제왕적 대통령제와 패권적 정당체제가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으로서, 오늘 한국사회 내란의 책임은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있다.
현행 헌법은 구멍 난 바가지와 같아서 누가 정권을 잡아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은 여야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 빨리 정국수습의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한국은 안으로는 북한과의 대결 구도가 지속되면서 동족상잔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남한 내부의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의 갈등도 심각하다. 밖으로는 주변 강대국인 중국이 한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지금 외우와 내란의 위기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 망국의 길로 접어들지 않으려면 이 내란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좌파의 나라도 우파의 나라도 아니다. 1만 년을 이어온 밝달민족의 나라이다. 이 위대한 나라의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여야 정치권에 네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진보 보수라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기보다 1만 년을 이어온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자.
둘째, 당과 자신의 일시적 이익을 꾀하기보다 8천만 민족에게 끼치게 될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자.
셋째, 당장 목전의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먼 뒷날 내려지게 될 역사의 심판을 먼저 심사숙고하자.
넷째, 고조선, 고구려, 백제의 멸망에 중국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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