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LH, 15년 만에 미분양 주택 매입…해결책인가, 미봉책인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닮은 꼴...가격 협상·분양자 갈등 관건

정부가 지방의
정부가 지방의 '악성 미분양' 주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약 3천호를 직접 매입하기로 결정한 19일 대구 수성구 파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할인분양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5년 만에 비수도권 미분양 주택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과거 2008년 금융 위기 당시를 떠올리면 건설사와 LH 간의 가격 협상, 기존 분양자와의 갈등, 실효성 논란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15년 전에도 대한주택공사(현 LH)와 건설사 간의 가격 줄다리기가 팽팽했으며 결국 대폭 할인된 가격에 매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분양자들의 반발이 거셌고, 대규모 임대 전환이 지역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았다.

◆건설사 vs LH, 또다시 가격 줄다리기?

LH가 비수도권 미분양 주택을 직접 매입하는 것은 2008~2010년 이후 15년 만이다. 주택업계는 2008년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초기에는 건설사와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의 가격 줄다리기가 팽팽했다고 회상했다. 대한주택공사는 최소 20% 이상 할인된 가격을 요구했으나 건설사들은 최소한 감정가는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갈수록 열악해지자 '눈물의 땡처리'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 결과 대한주택공사는 최종적으로는 분양가보다 30~40% 저렴한 가격에 전국에 산재한 미분양 주택 7천58가구를 매입할 수 있었다.

LH 매입은 기존 분양자들과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번졌다. 실제 지난 2008년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시공사가 전체 712가구 중 미분양된 388가구를 대한주택공사에 매각하자 입주자들이 항의 집회를 갖는 등 반발했다. 입주자들은 전체 가구수의 50% 이상이 임대주택으로 전환되면 재산상 막대한 피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건설사는 준공 후 1년 동안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해야 했다.

LH의 매입안이 용두사미로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정부는 LH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건설사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 토지를 3조원가량 매입해 건설 경기를 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1차 모집 공고에서 총 6건(545억원 규모)만이 접수됐다. 1차 목표 매입 금액인 2조원의 2.7%에 그친 것이다. 이마저도 5건은 신청 자격 미달이었고 1건은 시장성 부족으로 모두 실제 매입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현재 LH는 관련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고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태스크포스(TF)도 해체됐다.

◆정부의 미분양 해소책…실효성 있나?

정부는 LH 직접 매입 외에도 미분양 해소를 위해 매입형 등록임대 확대, 기업구조조정(CR) 리츠 활성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매입형 등록임대의 경우 현재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에만 허용되는 되던 것을 비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다. 준공 후 아파트를 분양받아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중과 배제 등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송원배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이사(대영레데코 대표)는 "매입형 등록임대는 임대주택법 개정이 필요하고 효과도 미비하다"며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준공 때까지 안 팔리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선뜻 살려는 사람 없을 것이다. 대상을 미분양 아파트 전체로 확대해야 하고 추가적인 세제 혜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구조조정(CR) 리츠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미분양 주택 해소의 구원투수로 꼽히던 CR리츠는 까다로운 요건과 부족한 인센티브 등으로 도입 후 1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올해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장으로 선임된 대구과학대 이병홍 금융부동산과교수는 "CR리츠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한 뒤 배당 수익 명목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간접 투자 방식"이라며 "미분양 주택은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까다로운 리츠 설립 요건을 완화한다 해도 투자자들이 나서긴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구 미분양 주택 증감 현황. 대구시 제공
대구 미분양 주택 증감 현황. 대구시 제공

◆강화되는 DSR 규제, 미분양 해결엔 역부족

디딤돌 대출 우대금리 신설이나 지방은행 유동성 확대도 강력한 대출 규제들이 버티고 있는 시장 상황과는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취득세·양도소득세 감면 등 주택 수요를 높일 수 있는 세제 혜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권에서 요구해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환 능력에 따라 대출 한도를 달리 설정하는 DSR은 오는 7월 가장 강력한 규제인 3단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장은 "건설 경기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은행들도 사업 관련 대출을 크게 축소하는 분위기다. 대출 규제 탓에 잔금 대출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기존 주택이 안 팔리는 바람에 신축 아파트 입주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미분양 물량은 개인이 해소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12%에 달하는 법인의 부동산 취득세를 감안하면 법인이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법인이 매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뒤따랐다. 대구과학대 이병홍 금융부동산과교수는 "DSR 등 대출 규제와 세제 혜택은 당장 손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런 정책들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어느 지역만 풀어준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생긴다. 이를 우려해서 좀 더 지켜보겠다는 게 정부의 속내일 것"이라며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인구, 기반 산업 등 구조적 원인들과 맞물려 있다. 지역 경제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드는 근본적으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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