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어린이집 폐원 사례는 특히 인구 유출이 심한 구도심에 집중됐다. 최근 재개발‧재건축으로 들어선 신축아파트의 경우 500세대 이상이면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국공립어린이집이 의무설치되면서 지역별로 보육 인프라가 양극화하는 모양새다.
◆아이 웃음소리는 어디 가고…수목 시들고 잡초만 무성
23일 찾은 대구 달서구 월암동 성서산업단지 성서어린이집. 성서산단 내 유일한 어린이집으로 이곳 근로자들에게 사실상 '직장어린이집' 역할을 해 온 이곳은 올해 문을 닫았다. 1993년 개원 당시 163명에 달했던 원아 수가 인근 지역 슬럼화로 지난해 20명으로 쪼그라든 탓에 비교적 운영 안정성이 높은 국공립어린이집임에도 폐원을 피하지 못했다.
성서어린이집은 운영을 중단하고도 아직 활용처를 정하지 못해 방치된 상태다. 건물 외벽에는 '0~7세 원아 모집 중'이라는 현수막이 아직까지 걸려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놀이터는 붉은색의 접근금지 테이프가 붙어있었고, 닫힌 창문 너머로는 아이들이 갖고 놀았을 분홍색 장난감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달서구청은 건물 활용을 두고 고심에 빠진 상태다. 당초 달서구청은 이곳에 달서시니어클럽 등 노인 복지시설을 이전하려 했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달서구의회의 지적을 받고 추진을 중단한 상태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원아가 감소하면서 어린이집 운영이 불가능하게 됐다"면서도 "적절한 활용처를 찾지 못해, 현재는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생 없어도 폐원 못해" 진퇴양난에 빠진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해달별 어린이집의 경우 정원 79명 규모에 올해 원아는 17명 뿐이다. 0세는 한 명도 받지 못했다.
이곳 석성수 원장은 "정원이 79명인데 올해는 17명을 받았고, 0세는 하나도 받지 못했다. 대부분 1-3세 아이들"이라며 "원아가 점점 감소할 줄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이곳처럼 법인어린이집은 오래 전 구도심에 들어선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원생 감소 영향이 큰 데다 폐원을 할 경우 법인 재산 전부가 국가에 귀속되는 탓에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을 이어가는 곳이 적잖은 상황이다.
업계는 법인의 재산권 일부를 보장해 어린이집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라도 보육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 원장은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울 경우 법인 재산권을 국가가 아닌 법인 이사회에서 정한 단체나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비어버린 공간에 어린이집이 아닌 또 다른 보육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겠냐. 점점 빈 어린이집은 늘어날 텐데 국가에서 다양한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도심·신도심간 보육 격차 극심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이 감소하는 과정에서 구도심과 신도심 간 보육 격차가 극심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도심에서 젊은 인구가 유출되면서 문을 닫는 어린이집이 늘어나는 사이 새 주거단지의 경우 500세대 이상이면 2019년 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국공립어린이집이 의무설치돼서다.
자녀 셋을 둔 대구 북구 주민 김귀연(39) 씨는 "맞벌이 부부라 아이들을 쉽게 맡기고 데려올 수 있어야 해서 집과 가까운 어린이집을 선호하는데 원래 다니던 관음동의 민간어린이집이 원아 감소에 운영난을 겪다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급하게 이사까지 했다"며 "같은 지역 안에서도 동네 분위기에 따라 보육격차가 워낙 크니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원아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 임시 폐원하거나 아예 문을 닫았다고 신고한 어린이집 92곳 중에는 읍‧면 지역의 달성군(21곳)을 제외하면 구도심이 밀집한 대구 중구와 서구의 신고 사례가 유독 많았다.
지역 보육업계는 지역별 보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자체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지금 추세로는 지역 간 보육격차가 결국 구도심 슬럼화를 가속화하고, 재차 원아 감소 등 인구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윤준수 대구시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형편상 이사가 쉽지 않은 가정도 있을 것이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집 근처 어린이집을 선호하지 않겠나"라며 "신축 아파트 위주로 국공립 어린이집이 생기고 있는 반면, 구도심도 어린이집이 적정 숫자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보육료와 교육비와는 별개로 지역 양극화를 막기 위한 다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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