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중국에 추월당하고 법 테두리에 발목 잡힌 반도체

한국 반도체 기술 수준이 2년 만에 중국에 대부분 추월(追越)당했다는 진단은 충격적이다. 국내 전문가 39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반도체 기초 역량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뒤졌다는 것이다. 특히 미래를 담보할 기초·원천 및 설계 분야조차 중국에 뒤지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핵심 인력 유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 미·중 견제, 자국 중심 정책, 공급망 현지화 등은 한국 미래 반도체 기술을 위협하는 요소들로 꼽혔는데 당장 벌어지는 현상만 봐도 위협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반도체에 25% 이상 관세를 부과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발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전방위(全方位)로 확산하면서 업계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을 통해 자국 제조 생산 능력을 키우려는데, 한국 업체들로선 까다로운 셈법이 남게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현지 법인에 상당 물량의 부품·소재·장비를 수출해 중국에서 후공정(後工程)을 마친 메모리 반도체를 재수출하는 구조여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 관세 적용에 따라 미국 생산 시설을 확장해야 할 수도 있는데, 미국이 반도체법에 따라 현지 생산 시설에 약속한 보조금 지급마저 재검토한다는 입장이어서 해법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천419억달러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고, 전체 수출액 중 20% 이상을 차지하는 1등 품목이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지난주 한국경제인협회장 취임사에서 "한국의 AI 투자 규모는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반도체 생산 라인의 증설 허가를 받는 데만 2∼3년 걸린다"고 일갈(一喝)했다. 중국의 기술, 미국의 견제, 대만의 총력전에 일본의 부활까지 가세해 반도체 전쟁이 벌어지는데 한국은 투자부터 법까지 지뢰밭투성이다. 반도체 특별법의 '주 52시간 예외'부터 해결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진짜 중도 보수를 외치려면 여기에 매몰돼선 안 된다. 한시(限時) 기한을 조정해서라도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여야정 국정협의회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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