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이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18살 남자환자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보행에 문제가 생겨 내원했고, 우리 병원에서 운동치료 중이다.
지동이는 항암치료를 하다보니, 컨디션도 들쑥날쑥이고 결석하는 날도 많다. 갑자기 고열이 나기도 하고 이를 빼다가 지혈이 안되서 입원했다고 치료를 못올 때도 있다.
첫 내원날,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대부분의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하는 지동이를 보며, 운동치료는 하겠나 싶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백혈병 환자인 것도 짜증나고, 사소한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암환자 특유의 부정적인 기운이 지동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지동이의 속마음이 나를 흔들었다. "친구가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지동이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았는데 중2때 백혈병을 진단받으면서 자퇴를 하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다 끊어버렸다고 했다. 그 때는 '치료하면 곧 좋아지겠지' 싶었는데 치료는 계속 길어지더라고. 그러다가 이제는 외롭다고, 친구가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서 나는 내 아들과 또 다른 자원자인 현규, 지동이, 이렇게 3명이서 함께 운동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래인 녀석들은 모두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렸고 한번씩 같이 밥도 먹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쓴 글이나 그림으로 책을 만들어 주는 '나도 작가'라는 우리 병원 프로젝트에 지동이가 편지를 보내왔다. 지동이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많이 힘들어서 스스로 동굴속으로 숨었었는데, 그렇게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치료진과 형님들이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그 손을 잡고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동굴밖으로 나오라 하더라고. 많이 망설였지만 이제는 그 손을 잡고 동굴 밖을 향해 한걸음 내디뎌 보려 한다고 했다. 용기를 내보겠다고.
그리고 덧붙인 지동이의 마음은 다시 한번 나를 흔들었다.
'지금 당신이 터널속에 있다면, 힘을 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요. 내게 치료 선생님들과 형님들이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당신곁에 있는 형님의 손을 잡으세요.'
지동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 현규와 아들래미에게 지동이 손을 잡아주라고 한 거였는데 이제는 지동이가 손을 내미는 제 2의 형님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동굴 밖은 햇빛도 비추지만 비도 오고 바람도 분다. 지동이의 앞날이 따스하지만은 않겠지만. 비도 맞고 눈도 맞다 보면 다시 동굴속으로 들어가고 싶겠지만.
하지만 지동이 니 옆에 너와 함께 눈비맞는 친구들이 있으니 차라리 빗속에서 함께 축구나 한판 하자고, 그렇게 살면 재밌을 거라고, 얘기하고 싶다.
"지동아! 늘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고맙다!"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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