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86세대'다. 대학 시절 아스팔트에서 처음 사회를 배웠다. 최루탄, 백골단과 맞서며 소위 '콩밥'도 먹어 봤다. 당시 그런 학습은 비정상적인 습관을 남겼고, 그렇게 정착한 비정상적인 행태는 86세대의 정체성이 됐다.
'87체제'는 '86세대'에게 갑옷이다. 하지만 사회적 환경과 작동 양상이 바뀐 현재는 오히려 구성원의 몸을 해치고 낙오자를 만든다. 2030세대 젊은이들은 기마병인데, 부모 세대의 중갑보병 군장을 입으란다.
거추장스러운 87중갑 뒤에 정신적으로는 미숙아인 어른들이 몸을 숨기며 허튼소리로 호령하고 있다. 사회를 좌지우지하며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87체제의 핵심은 '제왕적 권력'을 막자는 것인데, 짬짜미로 헌법기관들이 정당성 없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조국 사태'로 각성한 요즘 2030들이 탄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거리로 뛰쳐나와 소리치고 있다. '살려 달라'고, '바꾸어야 한다'고.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원인을 제공했다. '가족경영'으로 꿀보직을 세습했다. 정작 본업인 선거관리는 뒷전이고 '공정선거' '비밀투표'는 구호일 뿐이었다. 소쿠리로 기표 용지를 나르고, 책임자가 비밀 폰으로 야당과 내통했다. 온라인 대문을 대책 없이 활짝 열어 놓았다.
선거 때면 수천 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우리 사회 누리집들을 헤집고 다닌다. 그 부대가 '라자루스'라는 해킹 그룹을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암호화폐를 탈취하며 악명을 높이고 있다. 그들을 세계 최고의 해커로 만들어 준 것이 우리 기관들의 허술한 보안 시스템이다. 국정원의 경고도 있었고, 감사원의 감사 시도도 있었지만, 그들은 87체제 헌법을 갑옷 삼아 기득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헌법 오역으로 이를 합헌화해 준 기관이 〈헌법재판소〉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그 실체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헌재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선관위의 일탈에 면죄부를 줬다. 면죄부를 준 재판관들 대부분이 선관위원장 출신이란다. 이해충돌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제지할 수 없다. 헌재는 그야말로 '최종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당과 짬짜미로 '명분'을 만들고, 야당 단독으로 추천한 헌법재판관의 임명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헌재가 선관위의 손을 들어 준 이유가 뭘까? 같은 헌법기관으로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일까? 선관위가 감사 대상이라면 헌재도 감사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계엄의 명분이 된 '부정선거' 이슈를 덮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정해져 있고 명분을 만드는 과정 아닐까?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헌법기관들이 대통령과 맞서는 것은 그 뒤에 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 헌법기관 〈국회〉가 이들을 후견한다. 지금 국회 권력은 거대 야당이 독점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위의 헌법기관들과 달리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국가원수도 건드릴 수 없다. 국회는 '조자룡 헌 칼 쓰듯' 탄핵과 특검을 남발하더니 급기야 대통령까지 탄핵했다. 이제 이를 마무리할 헌재를 도와주는 일만 남았다. 헌재의 '탄핵 인용'이라는 마지막 깃발을 꽂아야 대한민국이 그들의 영지가 되는 것이다.
'싸우면서 배운다'고 그들의 행태는 군사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로지 제왕적 대표의 안위와 대권을 위해서 모든 권한을 사유화한다. 그러니 일탈의 대명사인 선관위와 '정치적 중립성'에 치명타를 입은 헌재를 옹위하는 것이다. 절대 권력을 막기 위해 87체제가 만들어 준 비대화된 국회 권능과, 조폭과 흡사한 '미래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그 권력의 원천이다. 이런 불공정과 부조리가 '정의와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2030세대를 분노케 하는 것이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에서 최후진술을 한 그날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을 1.5%로 낮춰 발표하며, "그게 현재 우리의 실력"이라고 했다. 무역 전쟁이 확전되는 앞으로가 더 우려스럽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끓는 물에서 뛰쳐나오고 싶어 한다. 이제 기성세대가 응답해야 한다. '개헌' 변죽을 더 이상 울리지 말자. 말의 성찬은 이 정도면 됐다.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한다. 미래세대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인 87체제를 벗어던지고 그들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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