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서명수] '우리법' 진지전 vs 체제 수호 성전(聖戰)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국가권력이라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문화·언론 등 국가권력을 에워싸고 있는 참호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가면서 강고한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단번에 국가권력을 접수한 '러시아 혁명'과 달리 서구 부르주아 국가는 강고한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한 참호(塹壕)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장기간에 걸친 '진지전'을 전개해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소위 '진지전(陣地戰·war of position)' 이론이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를 통해 제시한 혁명 이론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한 그람시의 전략은 이탈리아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 운동권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듯이 보이는 우리 사회는 실은 그람시의 진지전 이론이 교과서적으로 전개된 모범 사례로 꼽힐지 모른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3차례에 걸친 15년간 그들 진영이 구축해 온 정치 체제가 지속되면서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법부와 노동 및 언론·문화계의 헤게모니는 완연히 왼쪽으로 기울었다. 민주노총은 야당의 후견인(後見人)이자 행동대로 자리 잡았고 실체가 불분명한 '시민'을 내세운 각종 시민 단체들이 친위대(親衛隊) 역할을 맡았으며 정당과 국회 등 정치권, 사법부와 언론계도 차례차례 장악됐다. '보수 정부의 등장은 향후 100년 동안 보지 못할 것'이라는 이해찬과 유시민 등 괴벨스류(類) 좌파 선동가들의 호언장담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은 졌다. 이는 그들 진영에게 감내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 시스템을 흔들고 입법 폭주와 탄핵권 남용으로 윤석열 정부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의 음모를 간과한(?) 윤석열 대통령이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비상계엄'이라는 비상대권을 통해 국면 타개를 노린 것은 '그람시의 후예'인 그들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고 접할 수도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神)의 존재와 같은 중국 공산당처럼 곳곳에 참호를 깊숙하게 파놓고 도사리고 있다가 결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든 문재인 전 대통령의 혜안(慧眼)은 높이 평가돼야 마땅하다. 공수처가 있었기에 윤 대통령 탄핵을 9부 능선까지 몰아붙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오동운 공수처장은 상부(?)의 지시를 받아 서울서부지법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윤 대통령을 체포·구금하는 데 성공한 후 와인을 마셨다.

국회탄핵소추대리인단에 똬리를 튼 김이수·이광범 변호사와 박범계·최기상 의원 등은 소위 '상부지휘소'로 자리 잡았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정계선·이미선 헌법재판관, 윤 대통령에 대한 1, 2차 체포영장 및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순형·신한미·차은경, 헌법재판관 후보 마은혁 판사까지 탄핵 국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서울서부지법 판사들이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두더지'는 다시 숨어봤자 소용없다. 이참에 '우리법'에 오염된 법원과 헌재 등 사법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우리법'과의 싸움은 자유와 인권, 자율과 건강한 시민사회가 공존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성전(聖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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