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SF(과학소설)상으로는 휴고상, 네뷸러상, 필립K. 딕상 등이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필립K. 딕상에는 지난 달 한국인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가 최종 후보 여섯 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려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 소설 가운데 최초로, 동시에 올해 후보작 중 유일한 번역서로 후보에 올랐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SF 출간물'에 수여되는 이 상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인 미국 SF 작가 필립 K. 딕(1928~1982)을 기리는 상으로, 사망 이듬해인 1983년부터 시상해 왔다. 올해 수상작은 오는 4월 18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SF 판타지 컨벤션 노웨스콘 47에서 발표될 예정으로 '한국인 최초'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 수상에 도전한다.
이러한 유수 SF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작가가 있다. 네뷸러상, 필립K. 딕상, 휴고상, 로커스상을 연달아 수상하고 특히, 휴고상은 두 차례, 네뷸러상은 무려 네 차례나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세라 핀스커이다. 2020년 필립K. 딕상을 수상한 그의 소설집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가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됐다. 저자의 첫 소설집임에도 한 차원 높은 상상력과 밀도 높은 서사로 SF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중편 분량의 작품부터 약 네다섯 페이지의 엽편에 해당하는 작품까지 총13편의 이야기로 꾸려졌다.
각각의 작품들은 우주여행, 멀티버스, 디스토피아 등 대중문화 전반에 익숙해진 SF 요소를 기본적인 배경으로 하되,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을 통해 입체화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투하는 개성적인 인물들이 작품의 재미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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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의 배경은 거대한 해양 재난이 일어난 후 멸망한 세계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 '베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해변에서 떠내려오는 자들을 마주하지만, 온전한 신체로 당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록스타인 '개비'를 구하게 되고 두 사람은 파괴된 사회에 대한 회상을 나누다가도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듭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음 날 개비는 베이의 기타를 훔쳐 도망가지만, 다시 그를 찾아온 베이와의 대화에서 기타에 숨겨진 비밀을 공유하며 미묘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 이제 두 사람은 희박한 생존 확률을 안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도시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 불안을 털어내려는 듯 개비는 연주를 하고, 베이는 거기에 가사를 붙인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다로 떨어지지만 어떤 것들은 다시 기어 나와 새로운 것으로 변한다는 내용의 가사를." (103p)
상상에 기반한 디스토피아적 상황에도 독자들의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들이 몇몇 자리한다. 우선, 표제작을 비롯해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 내면 깊숙한 곳에는 선뜻 공감이 가는 애틋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적 요소를 폭넓게 차용했다는 점도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록스타와 기타처럼 음악과 밴드 문화는 서사의 주된 재료로 사용된다. 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을 네 장 발매한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도 관련이 깊은데, 서정적이고 차분한 구간과 반항적이고 경쾌한 구간이 교차하는 능숙한 연주처럼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특유의 리듬감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쩌면 가상보다 현실이 더 가상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SF가 마냥 섬뜩한 공상의 영역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무한한 기술의 발전과 그 속에서도 움트는 인간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SF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현실의 해결책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정교한 서사와 우아한 문장으로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야기들이 한국의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52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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