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최병고] '비리 종합 세트' 선관위를 누가 신뢰하겠나

헌재 권한쟁의심판,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 감찰 대상 아니다' 판단
감사원 감사, 2013년 이후 채용 비리·근무 태만 만연…무소불위 성역
선관위 자체 자정 노력 믿기 어려워, 강력한 외부 통제 수단 필요해

최병고 서울취재본부장
최병고 서울취재본부장

감사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해 직무감찰을 한 것은 위헌·위법하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감사원은 2023년 6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선관위를 상대로 채용 비위 여부 등을 조사했다. 이를 두고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인 자신들의 지위를 침해했다며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에서 헌재가 선관위 손을 들어줬다.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내려진 결과라고 한다. 대통령이 임명 권한을 가진 감사원장이 선관위를 직무 감찰한다면,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선관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반 국민 눈높이에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인 취지는 민주주의 제도 근간인 '선거 관리 업무'를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한 것이지, 채용·근태 등 조직 관리를 선관위 입맛대로 알아서 하라고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엄연한 국가기관인 이상 시스템의 통제를 받아야 함은 마땅하다.

또 하나는 선관위의 자체 '자정(自淨) 의지'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관이 겸임하는 중앙선관위원장은 임기 6년이지만 역대로 임기를 다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성상 정권이 교체되면 매우 높은 확률로 교체된다. 위원장이 비상임이다 보니 실질적 업무와 권한은 선관위 사무총장이 가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 똘똘 뭉쳐 전횡(專橫)을 저질러도 통제가 취약하다. 이번에 선관위 채용 비리에서도 조직적인 묵인과 방조가 있었다.

감사원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7개 시도선관위에서 가족·친척 채용 청탁, 면접 점수 조작, 인사 관련 증거 서류 조작·은폐 등 비위가 만연했다. 선관위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 가족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예사로 일어났다.

선관위 특혜 채용은 주로 국가공무원을 지방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경력 경쟁채용(경채) 과정에서 발생했다. 감사원이 2013년 이후 시행된 경채 291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모든 회차에 걸쳐 총 878건의 규정 위반이 있었다.

중앙선관위 A 전 사무총장(장관급)은 아들이 선관위 8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고, B 전 사무차장(차관급)은 딸을 선관위 경력직 공무원으로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관위는 이런 '특혜 채용'에 대해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과거에 있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선관위 한 인사 담당자는 선관위를 '가족회사'라고 칭하며 "선거만 잘 치르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근무 기강도 해이했다. 해외 체류를 목적으로 장기간 무단결근하는가 하면, 재외선거관 파견 관리 상태도 부실해 최대 3개월 동안 '해외 파견 준비'만 하는 직원도 있었다. 로스쿨 진학 목적의 연수 휴직을 부당 승인한 사례도 있었다.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인사·감사 분야 문제점을 상당 부분 개선했으며 향후에도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뒤늦게 사과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무소불위(無所不爲) 성역(聖域)을 유지해 온 선관위의 말을 누가 믿을까. 감사원조차 선관위를 들여다볼 수 없다면 저 만연한 비리를 누가 잡아낼 수 있겠나. 이런 지경이니 선관위가 선거 부정 의혹을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관위에 대한 효과적인 외부 통제 장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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