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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사라질까? 국회청원 동의수 5만 충족 임박

국회청원(국회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
국회청원(국회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형법 307조 1항), 일명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폐 여부가 도마에 오른다.

이 죄 폐지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이어져 온 가운데, 조만간 국회에서 다룰 수 있을 전망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국회청원) 홈페이지에 등록돼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요청에 관한 청원'이 3월 1일 오후 7시 30분 기준으로 4만5천637명의 동의를 모아, 국회행 기준인 5만명에 임박한 상황이다.

국회청원은 30일 안으로 5만명으로부터 동의를 받은 법안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시키는 제도다. 이후 심사를 거쳐 채택(국회 본회의 부의 의결) 또는 폐기된다.

해당 청원은 지난 2월 19일 등록돼 20일 뒤인 3월 21일까지 동의수 모으기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남은 기간 4천363명 동의 추가는 수월해 보인다.

최근 국회청원은 윤석열 대통령 계엄 및 탄핵 사태 관련 안건(헌법재판관 탄핵, 국회의원 제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해체 등) 위주로 큰 관심을 얻었는데, 이런 가운데 그간 사회적 화두가 됐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다루는 청원이 비교적 높은 관심을 얻은 것이라 눈길을 끈다.

▶청원인은 "대한민국의 법은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하는 내용이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한다"면서 형법 307조 1항과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을 거론했다.

형법 307조 1항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참고로 형법 307조 2항에서는 허위사실 적시의 경우를 규정, 좀 더 강한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70조 1항에서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역시 참고로 정보통신망법 70조 2항에서는 허위사실 적시의 경우를 규정, 좀 더 강한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법 내용에 대해 여론에서는 '허위사실 적시는 당연히 팩트체크(사실확인)를 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실 그대로 적시한 것 뿐인데 왜 처벌이 가능한가?'라는 골자의 의구심을 꾸준히 표명해 왔다.

이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 표현의 자유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도 이어져왔다.

▶이어진 청원글에서는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활발해진 사실 적시 사례들을 언급, "미투 운동, 양육비 미지급 사실 공개, 상사나 권력자의 갑질 행태 폭로, 내부 고발 등 거짓 없이 다른 사람의 비리나 자신이 당한 피해를 고발하는 행위까지 모두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원인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있는 대로 말한 사람이 형사처벌 되는 것은 정당할까?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훼손되는 명예가 과연 그 사람이 애초에 가질 수 있었던 진정한 명예라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타인의 사회적 평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표현이라면 '진실' '허위'를 불문하고 일단 모두 범죄로 규정하는 게 우리나라의 명예훼손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고소를 남발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고, 진실을 고발한 사람들이 오히려 역고소를 당해 형사 피의자 및 수사 대상이 돼 큰 고초를 겪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이 같은 위험이 두려워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응당 드러나고 비판되고 개선돼야 할 부조리한 진실들이 은폐되고 있다"고 부작용을 강조했다.

청원인은 언론 보도를 두고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해 유독물질이 나온 식품, 화학제품, 비위생적 식당, 의료사고가 난 병원 등에 대한 언론보도는 유권기관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 됐다. 때문에 국민들은 해당 업체의 실명을 몰라 두려움에 떨고,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선량한 업체나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거나 의심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또 "미투 운동이나 내부고발의 경우에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고 사실을 폭로하게 된다. 결국 가해자는 다른 주변인들에 희석돼 부정적인 평가를 면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선량한 주변인들만 억울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이 때문에 폭로를 한 피해자에게 오히려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글 말미에서 청원인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폐지 반대론에서는 '공익 목적'이 있었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서 이에 대해 "그러나 '공익'이 무엇인지, 공익이 주된 목적인지, 비방의 목적이 주된 목적이었는지 등은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모호한 기준"이라며 이같은 '공익 목적의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의 부실함을 이유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힘을 실었다.

또 유엔(UN, 국제연합) 자유권위원회가 한국에 지속적으로 명예훼손의 비범죄화(형사상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점도 주목했다.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점, 언론 자유 및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킬 위험,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보복성 고소를 당할 위험 등을 거론했다.

이어 청원인은 "권력과 지위를 가진 자의 무기가 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요약해 강조하며 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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