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꿈꾸는 시] 신중혁 '연못 가의 매화나무'

1982년 '현대시학' 등단…사르트르 문학상·도동시비문학상 수상
시집 '상수리나무의 잠'·'나무의 변증' 등 7권, 한국문인협회·대구문인협회 회원

신중혁 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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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가의 매화나무〉

내가 먼저 가서 기다려야지

길 모롱이 공터에 눈사람 숯검정 콧대 높고

신발 끝에 뽀드득 밟히는 소리

삼동 나고 오마고 했으니

좀 먼저 와 기다린다고 선심이며 낯낼 일인가

지기를 만나는 반가움이면 견줄 데 없다

아끼는 화장품 토닥거려 졸음 털고

가슴에 바람 스밀까 봐 목수건 둘렀다

머잖아 황금 잉어 당도할 것이고

방울지다 스르르 꺼지는 입가에도

속기 묻어나는 금언 같은 것

퍼 나르다 비늘이 다 닳았다

기다리다 한두 잎 지는 꽃잎의 의미를

몽당비로는 쉬이 쓸어 담을 수 없지

신중혁 시인
신중혁 시인

<시작 노트>

아직 공터에 눈사람의 콧대가 도도하고 신발창에서는 뽀드득 소리가 난다. 먼저 가 기다리는 것은 갸륵하지만 서둘다가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의 단잠 깨울까 조심스럽다. 수족관 잉어는 만날 날 기다리며 유리 벽 바깥을 뻐끔거리고 있다. 생각은 스치기 일쑤고 말은 앞세우기 다반사다. 지금은 팔을 뻗어 기지개라도 켜야 할 때, 혹시 봄 날개에 가 닿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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