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일부 국책은행을 제외하면 '주식회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오랫동안 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불렀다. '기업'(企業)이 '기관'(機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거기엔 '권위'와 함께 '공공성'이란 책임이 따랐다. 그런 이유에서 은행원은 '믿음직한 직장인'의 대명사였다. 은행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은행은 국민들의 예금을 모아 기업에 빌려줬다. 선량한 국민들은 저축이 경제를 살리고, 애국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고속 성장을 하던 1970, 80년대 은행은 서민들에게 친근했다. 난전에서 생선 팔아서 번 돈, 돼지저금통의 코 묻은 돈도 환영을 받았다. 은행은 편안한 공간이었다. 은행원은 선망(羨望)의 대상이었다. 지금, 은행은 그 시절과 너무 멀어졌다. 국민들은 '빚잔치'로 끙끙 앓는데, 은행들은 '돈 잔치'로 덩실덩실한다. 이런 현상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여파인지,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 탓인지, 모르겠다.
은행권은 시장금리 하락에도 이자 이익이 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41조8천760억원으로 전년보다 3.1% 증가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 역시 사상 최대인 16조4천205억원이었다. 이익의 대부분은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預貸margin)에서 나왔다. 즉 '이자 장사'의 결과다. 자영업자 900만 명이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소상공인들의 눈물겨운 폐업이 속출한다. 이들의 고혈(膏血)이 은행의 배를 불리고 있다. 은행원 평균 연봉이 억대가 넘고, 희망퇴직금도 억~억~거린다. '춘향전'에 나오는 한시가 절로 떠오른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은행 점포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 뱅킹을 못 하는 어르신들은 돈을 찾기도, 세금 내기도 어렵다. 젊은이들도 은행 업무 보기가 힘들다. 영업점에 가면 기다리다 지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전체 영업점 수는 2023년 말 3천927개에서 올 1월 말 기준 3천790개로 137개 줄었다. 영업점 통폐합(統廢合)은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의 주민들이 은행 점포를 가려면 평균 4.8㎞를 이동해야 한다. 은행 콜센터도 연결이 어렵다. 요것 저것 누르라고 해 놓고, 툭하면 '대기 인원 ○○명'이란다. 은행들은 경영 효율화(效率化)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은행이 줄인 비용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가된다. '불편'이란 이름으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25일 기준금리를 연 3%에서 2.75%로 0.25%포인트 낮췄다. 금리를 내려 돈을 풀어 내수(內需)를 살리겠다는 의지다. 국민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반갑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가 곧장 대출 금리 인하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예금 금리는 쏜살같이 내린다. 금융당국이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하지만, 은행권은 최대한 미적거린다.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조장한 것은 정부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들은 가계부채를 줄이라는 당국의 '지침'에 따라 오히려 금리를 올렸다. 정부의 조치가 정교(精巧)하지 못한 탓이다.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과도한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에게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당국에 지시했다. 2년이 지났다. 달라진 게 없다. 은행은 철옹성(鐵甕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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