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扁鵲)은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명의다. 그의 의술은 워낙 신통하여 죽을 병에 걸린 괵(虢)나라 태자를 살리고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의 안색만을 보고도 병세를 진단하는 등 신이 내린 의술을 가졌다는 평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는 형이 둘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뛰어난 의사였다. 어느 날 위나라 왕이 편작을 불러 물었다."너는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의술을 갖게 되었느냐?"고 하자 그는 "제 둘째 형님의 의술에 비하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고 답한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둘째 형님은 병세가 미미했을 때 치료해 큰 병이 되는 걸 막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왕은 다시 "그럼 형제들 중에서 둘째 형이 가장 의술이 뛰어난가?"라고 묻자 편작은 "아닙니다. 둘째 형님보다 큰 형님이 제일 의술이 뛰어납니다.
큰 형님은 환자가 병이 발생하기도 전에 얼굴빛만을 보고도 원인을 제거하고 건강하게 만드니 치료받은 사람은 눈치도 채지 못해 그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지요. 저는 환자의 병세가 깊어져서 고통스러워 할 때야 비로소 치료를 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반려동물의 건강검진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이유
편작의 큰 형님 의술을 요즘 말로 풀어보면 예방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방의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건강검진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건강검진임이 틀림없는데 반려 동물의 건강검진이 오히려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2가지 있다.
첫째는 반려동물의 시간은 사람보다 더 빨리 흘러가기 때문이다.평균 수명을 약 15년 정도로 잡았을 때 강아지와 고양이의 1년은 사람의 7년 정도이다. 그만큼 생체 시간도 사람보다 더 빠르게 흐를 수 밖에 없다. 사람의 경우 얼마 안된다고 생각하는 시간 동안에도 반려 동물의 신체는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되고, 질병이 발생하게 될 경우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둘째로 반려 동물은 좀처럼 아픈 내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사람의 경우는 두통이 생기면 진통제를 먹고 감기가 심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있지만 말 못하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몸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보호자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반려 동물들은 야생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픈 곳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서 질병이 생겨도 증상을 발견하는 게 늦어지기 십상이다.
특히 고양이의 경우는 부상이나 질병이 있을 경우 다른 동물들이 그 약점을 감지하고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픔이나 불편함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반려동물 건강검진은 언제?
반려동물이 1살이 될 때 첫 건강검진을 하는 것이 좋다. 이 시기에 강아지와 고양이는 성장기를 마치고 성견, 성묘가 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청소년기에 폭풍 성장을 하듯이 반려동물들도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나며 관절이나 치아도 빠르게 성장한다.
이 때 반려동물의 건강상태를 살펴보고 그에 맞는 건강관리 계획을 세워서 장기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가끔은 선천적인 심장 질환이나 혈관기형, 내부 장기의 이형성 등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질병들은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1살이 되면 첫번째 건강검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연령별 건강검진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보통 1살에서 3살까지를 청년기 건강검진이라고 보면 되는데 소형견의 경우는 슬개골탈구가 잘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 진단을 받고 수술을 상의해야만 한다. 또 고양이의 경우는 결막염이나 치아흡수병변, 잇몸병이 잘 생기기 때문에 구강검진은 필수라고 볼 수 있다.
4살부터 8살까지는 장년기로서 성인병에 해당하는 대사성 질환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강아지의 경우는 담낭슬러지, 신장결석, 방광결석, 디스크, 만성 피부염, 외이도염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고양이의 경우는 방광염이나 배뇨장애증후군, 신부전 그리고 잇몸병이 생기기 쉽다.
노년기에 해당하는 9살은 사람으로 치면 60대로 접어드는 시기다. 노화로 인한 질병들이 대부분 찾아오는데 치주골 융해로 치아 손실이 본격화되어 섭식 장애가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 특히 노령기에 접어드는 이 시기에는 건강검진 주기를 좀 더 짧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이 때부터는 면역력이나 신체 기능이 급속도로 약화되기 때문에 6개월에 한 번은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건강검진의 종류
반려동물의 건강검진 항목은 크게 혈액검사, 소변검사 그리고 영상검사로 나눌 수 있다.우선 혈액검사는 반려동물의 전체적인 건강 상태를 살펴보는 아주 중요한 검사라고 볼 수 있는데 혈구검사를 통해서 적혈구나 헤모글로빈 수치를 확인하고 빈혈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소변검사는 소변의 성분을 통해 다양한 질병을 파악할 수 있는데 소변 속에 단백질이나 크레아티닌 수치가 높으면 신장 질환을 의심할 수 있고 백혈구나 적혈구가 섞여 있다면 비뇨기계 감염을 의심할 수 있다. 또 당이 높다면 당뇨병으로 진단할 수 있고 소변에서 결정체를 확인한다면 비뇨기계 결석 발생을 예상할 수도 있다.
영상검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엑스레이, 초음파, CT와 MRI 검사까지도 진행된다.엑스레이의 경우는 가장 기본적인 영상검사로 뼈와 폐, 심장, 복부 장기 등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사용한다.
초음파 검사는 방사선 검사만으로는 정확한 평가가 어려운 질병의 진단에 쓰인다. 복부 초음파는 복강 내 장기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종양이나 염증과 같은 질환 뿐 아니라 기능 평가까지 가능한 검사다.

◆반려동물의 특징에 따른 건강검진
입양을 통해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경우라면 입양 전에 잠복되어 있던 전염병을 가려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내외부 기생충 감염증과 곰팡이성 피부질환에 대한 검사는 함께 생활할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검사가 된다.
또 중성화하지 않은 반려동물의 경우 성호르몬에 의해 여러가지 질병들이 더 잘 발생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검진이 필요하다. 암컷의 경우에는 번식을 하지 않더라도 6살이 되면 자궁질환과 유선종양이 발생하기 때문에 유선전적출 수술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중성화수술을 받지 않은 암컷이라면 복강초음파 검사나 혈액검사, 엑스레이 검사 등을 받는 것이 좋다.
수컷 강아지의 경우에는 전립선이나 고환에서 종양이나 염증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이 역시 초음파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체크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수컷은 공격성이나 스프레이 등의 행동 문제가 심해져서 이를 참지 못한 보호자가 반려견을 유기하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체중일 경우는 심혈관계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급노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살찐 반려견은 지방종, 신장결석, 방광결석, 당뇨병 등이 잘 생기는데 비만은 고양이에게 더 심각하게 작용하는 편이다. 당화혈색소 검사 등으로 당뇨병의 발병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건강검진의 시작은 보호자 관찰
동물 검진은 수의사의 청진, 시진, 촉진부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심장 및 호흡소리, 장운동, 치아상태, 귀와 눈, 관절 기능의 이상 , 비만 여부를 평가한다.이 과정에서 보호자가 전달하는 정보는 매우 소중하다. 반려동물의 평상 시 식습관, 생활환경, 예방접종, 보행 이상, 특이 행동에 대한 정보들을 살펴들으며 수의사는 질병을 예측하고 보다 세부적인 검사 항목들을 추가할 수 있다.
똥 색깔도 강아지 질병을 예측하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건강한 똥색은 황갈색이며, 사료의 종류에 따라 사람보다는 조금 더 짙은 갈색이거나 단단한 모양을 갖추기도 한다. 흑변은 위나 소장의 출혈을 의심한다. 적혈구 내의 철분 성분이 산화되어 짙은 초콜릿 색을 띠게 된다. 혈변 또는 붉은색 변은 대장의 출혈이나 심각한 출혈성위장염을 의심한다.
황색변은 담낭이나 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녹색변은 이물섭식 또는 장염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회색변은 외분비 췌장 기능부전을 의심한다. 이러한 보호자의 관찰 정보가 반려동물 건강검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인간 평균기대수명 100세' 를 비교하면 '개와 고양이 기대수명 20세'는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보호자의 관심과 정기적인 건강검진만으로도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동행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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