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현재의 내가 배우고, 또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의 매력에 빠져 203개국을 여행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용(72) 씨다.
2015년부터 생업을 접고 여행에 뛰어들면서 총 203개국을 다녀왔다는 박 씨는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던 2020년부터 지금까지 갔던 여행 기록을 모아 총 5권의 책을 냈다. 지난 3일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 시리즈를 집필한 작가 박 씨를 대구 동구 모처에서 만났다.
-지난 10년간 생업을 접고 여행에 몰두해 200여 개의 나라를 여행하셨다. 이 기록을 담은 저서를 쓰셨는데.
▶총 다섯 권을 펴냈다. 1권은 유럽 편이고 2권은 아메리카 편, 3권은 아프리카 편, 4권은 오세아니아 편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5권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기록을 담았다. 마지막 6권이 이번 달에 나오는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서남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국가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203개국을 돌아다녔다는 소개도 흥미로웠지만 대구분이시라는 게 신기했다.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의성이다. 친가 형제들이 대구로 이사 오면서 함께 오게 됐다. 대구에서는 40년 정도 살았다.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무슨 일을 하셨나.
▶건축 자제, 가구 같은 것을 판매하는 종합 판매업을 했다. 그게 잘 안돼서 1999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후 공인중개사 일을 시작했다. 2014년까지 일을 하다가 2015년부터는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5년 동안 203개국을 다녀왔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대륙의 국가를 거의 다 갔다고 보면 된다.
-세계 곳곳을 누린 계기, 여행을 가기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1990년 대구 수성라이온스클럽에서 자매결연 한 대만 화련라이온스클럽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난생처음으로 외국에 나갔었다. 대만에 갔더니 돌아가는 원형 식탁도 처음 보고 음식도 맛있어서 감동을 받았다. 그때 외국에 많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1995년에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자매결연을 한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 교육연수를 가게 됐다. 연수를 마치고 미국 동부, 서부를 여행하면서 나이아가라 폭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백악관, 금문교 등을 보는데 너무 황홀했다. 책 제목처럼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는 말을 피부로 느꼈다.
생업을 포기하지 못한 채 매년 취미 삼아 여행을 다니다가 문득 '돈만 벌다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치우고 늘 꿈꿔왔던 여행을 다녀보자'라는 의욕이 일었다. 전 세계의 명소들을 직접 보겠다는 생각에 생업을 접고 여행에 올인하게 된 게 10년 전 일이다.

-제일 좋았던 여행지가 있나.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가장 좋은 곳 한 곳만 추천해달라는 질문 말이다. 잘못된 질문이다. '산을 가려는데 어느 산이 제일 좋냐'라거나 '폭포를 보러 가려는데 어느 폭포를 가면 좋겠느냐'는 질문이면 정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내가 간 곳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소들이다. 그러니 특별하게 좋은 곳은 없다. 모든 곳이 전부 특별하게 좋았다. 유럽의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수 세기에 걸친 역사와 문학, 철학이 그 도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에펠탑도 고흐의 그림도 이미 사진으로 많이 봤는데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특별할 게 있나. 중요한 건 그 안에 녹아있는 역사적 맥락과 배경이다. 알고 가서 보면 어디든 더 특별하고 감동적이다.
'만약 지금까지 갔던 여행지 중에 어디에 살 거냐'고 묻는다면 미국이라고 답하겠다. 땅이 넓고, 안전하고, 부자니까.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겠다. 203개국을 갔지만 이곳만큼은 다시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나.
▶아프리카는 너무 멀어서 가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그래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보라보라섬도 참 좋다. 한 번 가는 데 비행기만 왕복 9번 타야 해서 고민이 좀 된다. 유럽도 실은 한 번에 다 보기는 어려운 나라들이다. 그래서 경유할 일이 있을 때마다 들른다. 이탈리아도 프랑스도 대여섯 번 갔다.
이런 저런 사정을 다 고려하면 중국 후난의 장자제를 다시 가고 싶다. 이미 3번이나 가긴 했다. 그곳의 산은 전봇대처럼, 혹은 바위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그런 산이 수백 개가 있다. 우리나라 산은 넓게 퍼져있는 모습인데 정반대다. 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멋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해외여행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맞다. 생업을 접고 여행에 몰두한 지 올해로 10년인데 5년 동안 빡세게 다니니 갑자기 코로나로 하늘 길이 다 막혔다. 사실 이미 갈 데는 다 간 상태여서 아쉬운 것은 없었다. 다만 할 일이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내가 지금까지 가본 곳을 총망라해 여행 책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을 쓰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한 권당 400페이지가 넘는데 총 5권이다. 이번달에 6권 인쇄가 시작된다. 맨처음 1편 원고를 써서 서울 출판사에 열 다섯군데에 보냈는데 그 중 다섯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가장 처음 연락 온 출판사와 계약을 하러 서울에 갔는데, 책을 전부 뜯어 고쳐야 한다고 하더라.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곳을 적었는데 편집자는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 아닌가. 다 뜯어고치면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이후 지금의 출판사와 연이 닿아 출판을 하게 됐다.
-유네스코 기록 등록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6권이 전부 나오면 해외여행 최다 국가 기록과 이를 출간한 6권의 책으로 기네스북에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여행을 200개국 이상 간 사람은 많은데 그걸 책으로 출간한 사람은 없다고 해서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요즘 여행 계획도 있나.
▶7월까지 여행 계획이 다 정해져 있다. 우선 4월 10일에 중국 장강 크루즈 여행을 7박 8일 동안 간다. 크루즈는 보통 바다에서 하는데 강에서 한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5월 30일에는 실크로드를 지나 북단 쪽으로 나 있는 북로를 간다. 실크로드가 끝나는 지점부터 북로, 남로로 나누어지는데, 보통은 실크로드까지만 가지 거기까지는 안 간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험난해서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없다. 여행 전문가들이 많이 가곤 한다. 가을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지역 위주로 10일간 여행을 갈 생각이다.

-여행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모험심도 강하고 호기심도 많은 사람이다. 여행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행지를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다. 알고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그러니까 나는 아는 것이 재밌고, 아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는 차원에서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을 그냥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다.
생업을 접고 여행을 다닐 때 주변에서 '제 정신 아니다'라며 손가락질했었다. 세상에는 돈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행인 것일 뿐이다. 선택의 기준이 다른 거다.
나 역시 돈이 중요하다.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없다. 생업을 접기 전에 6개월을 고민했다. '돈을 벌면서 살지, 돈을 치워버리고 여행만 하고 살지' 말이다. 내 삶에서 여행은 돈의 비교우위에 있다. 청춘은 한 번 가면 다신 안 온다.
-살면서 여행을 많이 하기를 추천하나.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할 거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신이 직접 보지 않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거나 믿지 않는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기 마련이니까 그렇다. 여행을 하면 그런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나는 명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는데, 돈을 담을 그릇은 사주팔자에 의해 다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여행을 다녀도 돈을 담을 그릇이 크게 태어나면 많이 번다. 그러니 돈에 매몰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용기 있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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