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까치집을 얹어놓은 것 같은 파마머리에 방금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주둥이처럼 새빨간 불란서 루즈를 칠하고 톡 쏘는 향수에 정신이 얼떨떨해지는 USA 분과 향수를 뿌리곤 스마트한 양복에 발 꾸덕이는 쑥 튀어나온 구두를 신은 소위 현대의 첨단을 걷는 모던걸들이 중앙로 같은 번화한 곳에서 예사로 팽! 하는 덴 딱 질색이다. 그래 그것도 한낱 오락인가.'(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50년 1월 13일 자)
파마머리에 미국제 분과 향수를 뿌리고 프랑스 루주를 입술에 칠했다. 옷은 종아리가 드러나는 통치마 양장으로 차려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필시 멋쟁이다. 당시는 이런 여성을 모던걸로 불렀다. 모던걸이 길거리를 지날 때면 뭇사람은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하지만 시샘하는 소리도 들렸다. 파마머리는 까치집으로, 새빨간 입술은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주둥이로 묘사했다. 게다가 모던걸의 눈살 찌푸리는 행동에는 가차 없이 타박했다.
모던걸은 때때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세간의 비웃음을 자초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벌이는 모던걸의 어이없는 행동에 대해 '앙천대소'로 빗댔다. 이 같은 앙천대소의 대열에는 이른바 마카오 신사도 합류했다. 마카오 양복에 금테 안경을 콧등에 얹고 금시계 줄을 늘인 신사들이었다. 그들은 위세를 뽐내고 놀이하듯 길바닥에 '악패!'나 '팽!' 하는 소리를 내며 노폐물을 날린 뒤 유유히 걸음을 떼었다.
'아무 데서나 함부로 방뇨 방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5천 년간 계승해 온 역사 깊은 전통이지만 섭섭하나마 이런 건 하루바삐 때려 부수지 않을 수 없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길에서나 극장에서나 대합실에서나 함부로 악패! 하고 뱉는 가래침, 두 손가락으로 코를 꼭 걷어쥐고 멜로디도 아름답게 기술적으로 팽! 풀어던지는 코- 어쩌다가 잘못하여 지나가는 사람이나 옆의 사람에게 떨어지면~.'(남선경제신문 1950년 1월 13일 자)
그 시절 지린내가 진동하는 골목길이 적잖았다. 자고 나면 대변도 길거리에 굴러다녔다. 오죽했으면 5천 년간의 전통이지만 섭섭하더라도 하루바삐 때려 부수자고 했을까. 그 와중에 모던걸이나 마카오 신사는 길거리에서 '악패!'나 '팽!' 하는 소리를 내며 노폐물을 날렸다. 가래침과 콧물이었다. 짙은 향수에 파마 웨이브를 휘날리며 침을 뱉고 금테 안경에 금시계 줄 손목을 보이며 콧물을 날렸다. 가끔은 침이나 콧물을 맞은 사람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
이 같은 몰상식적인 행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기차역 대합실이나 극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빽빽한 극장 안에서 영화 상영 중에 아무렇지 않게 침을 뱉고 코를 풀어댔다.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환기가 제대로 될 리 없는 실내는 금방 연기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숨이 가빠 기침을 하고 엄마 등에 업힌 아기는 연신 울어댔다. 영화 값이 아까워 화장실에 갈 수 없었던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는 관객도 있었다.
일상의 공중도덕 준수로 문화 수준을 높이자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문화 수준 논란은 일찍이 공연예술을 두고 말이 많았다. 해방 이태 뒤인 5월 한 달 동안 대구에서는 '사랑에 죽고 돈에 울고' '첫사랑' '시집가는 날' 등이 공연됐다. 이들 공연물에는 사랑과 값싼 눈물, 감성에 치우친 레퍼토리라는 딱지가 붙었다. 같은 시기에 대구에서 2주일간 장기 공연을 했던 '울며 헤어진 부산항' 또한 비판이 거셌다. 낮은 관람 수준에 더해 제작자에게도 화살이 날아갔다. 민족문화의 진취성과 개혁성 없이 대중의 감성만을 자극해 돈벌이에 급급했다는 이유였다.
유행가에 대한 쓴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유행가 대부분이 저열하고 색정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아~ 사랑에 울고 돈에 속아서 또 돈에 울고' '괴로운 이 마음 눈물에 젖어' '죽어야 좋으냐 살아서 무엇하리!' 등은 청소년의 일탈 우려를 부추기는 노랫말로 지목됐다. 게다가 청년들이 술을 먹고는 의미도 모른 체 일제가 남기고 간 왜국(倭國) 노래를 부른다고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문화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일던 그즈음 모던걸과 마카오 신사는 타인의 반응을 즐기려는 듯 길바닥에 예사로 코를 풀고 가래침을 뱉었다. 우습게 보여도 그들에게 침 뱉기와 코 풀기는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고 뽐내는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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