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전통 민화의 새로운 매력 발견할 수 있길" 하당 권정순 초대전

4월 4일까지 달서아트센터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한 민화
전통과 미래 잇는 연결고리 되길"

권정순 작가의 민화 작품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가 달서아트센터 전시실에 상영되고 있다. 이연정 기자
권정순 작가의 민화 작품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가 달서아트센터 전시실에 상영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를 찾은 관람객들이 권정순 작가의 민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를 찾은 관람객들이 권정순 작가의 민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미디어아트 작품 앞에 선 권정순 작가. 이연정 기자
미디어아트 작품 앞에 선 권정순 작가. 이연정 기자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전통에도 변화와 혁신이 없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

달서아트센터 별관 1층 달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민화 작가 하당 권정순의 초대전은 그래서 특별하다. 30여 년간 전통 민화의 길을 걸어온 그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민화와 미디어아트 컬래버레이션 작품을 선보인다. 전통과 현대,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인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전시로 주목 받고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작가의 표정에서는 설렘과 긴장이 묻어났다. 그는 "민화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구나, 하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히 젊은 세대들이 민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미래로 전통예술을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화 연구 30여 년 한 길

권 작가는 지역에서 민화를 논한다면 빠질 수 없는 작가다. 그는 경북대, 안동대, 금오공대의 민화 강좌부터 계명대 대학원에 민화학 전공까지 개설하는 등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왔다.

현재 계명대학교 한국민화연구소장과 한국민화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경복궁 교태전에 걸려있을 뿐 아니라 주한미국대사관, 캄보디아 수상관저, 하와이주지사관저, 제8미태평양사령관저, 경북도청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가 민화에 빠진 것은 30여 년 전이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기도 전에 주한영국대사관에 취직한 인재였던 그는, 3년 간 그곳에서 근무하다 결혼하며 대구로 내려왔다. 출산과 육아 등에 전념하던 어느 날, 친구의 민화 전시를 보러갔다가 민화가 마음에 쏙 와닿았다.

"굉장히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이것이 진정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이후로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평생 이것을 할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는 어린 시절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고향 안동의 친척집마다 민화 그림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그의 내면을 흔든 게 아니었을까.

민화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명지대학교에서 민화 석사 과정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는 민화라는 장르조차 생소했고, 가르칠 교수가 없으니 학사 과정도 있을 리 없었다.

눈이 반짝 뜨였지만 수업을 듣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KTX도 없던 때, 대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내려 공항 리무진을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적어도 왕복 6시간은 걸렸다. 헌데 2년 간 한 번도 결석을 안했다"며 "그 때 나를 가르쳐준 분이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재 제1호인 송규태 교수님이다. 정말 열성을 다해 내가 여지껏 보지도 못한 그림들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셨다. 수업을 받은 뒤 대구에 내려갔다가 그 다음날 다시 서울의 교수님 화실로 올라가 더 배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만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짐을 이고 지고 서울에 다녀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책상에 앉아 그림에 열중했다. 고개를 들어보면 새벽 3시 언저리. 잠이 안 올 정도로 재미를 느끼다보니 2년 새 8~10폭 병풍을 5개나 완성했고, 그걸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지금도 그 때와 같은 마음이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민화 그림은 마르면서 색이 약간 변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어제 그린 그림이 어떻게 돼있을 지 기대하며 보러가는 것이라고.

"집에서도 항상 붓을 놓지 않는 게 습관이 됐는데,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작업 시간을 좀 줄여보려고 애쓰고 있죠. 새벽 4시쯤 일어나서 2시간 정도 걷기와 기체조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헬스 PT도 받습니다.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데 비해 다행히 눈 건강은 좋은 편이예요."

그는 개인 작업뿐 아니라 민화를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힘을 써왔으며, 국제적인 전시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2006년 (사)한국전통민화연구소를 설립한 뒤 연 두 차례씩 전시를 선보여왔고 특히 문화재청 해외문화홍보원에 자신과 회원들의 작품 40점을 기증해, 세계 각지의 해외문화홍보원에서 민화 순회전시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아메리칸 크래프트쇼에 초청 받아 전통 민화의 아름다움을 전파했다.

그는 "섬세한 필치에 감탄했다는 등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고 왔다"며 "앞으로도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달서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전통 민화와 미디어아트의 만남

이번 전시는 달서아트센터가 새롭게 시도하는 지·산·관·학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권 작가의 작품 콘텐츠를 기반으로 대구 스타트업 루프세터와 달서아트센터, 계명대학교 실감미디어 혁신융합대학사업단이 함께 전시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을 넘어 지역의 전통예술과 대학, 산업 기관이 함께 성장하는 협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전시장에서는 십장생도, 책가도, 대호도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작품 3점을 만나볼 수 있다.

미디어아트 책가도에서는 문방사우와 도자기, 골동품 등 각각의 요소들이 관람객들에게 말을 걸 듯 움직이는 모습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십장생도에서는 그림 속 사슴이 뛰어다니고 학이 날아다니며, 바람에 소나무가 살랑이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생동감과 감동을 전한다.

이외에 화조도와 책거리, 서산대사 인물도 등 권 작가의 민화 작품 10점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경복궁 서쪽의 별궁과 주변 풍경을 묘사한 서궐도와 수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그린 백동자도, 신선들이 연회를 여는 모습을 나타낸 요지연도 등은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로 인해 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는 "과거 민중들의 꿈과 바람을 민화에 담았듯,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감정을 공유하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의 힘을 가진 매체"라며 "전통의 본질적인 가치를 잃지 않으며 오늘날 그것을 어떻게 유효하게 전달할 수 있을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동오 달서아트센터 문화기획팀장은 "이번 전시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연결하고, 전통예술의 계승과 발전이 단순한 보존을 넘어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재해석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4일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053-584-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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