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구속이 취소됐다. 흔히 행정 권력 수반인 대통령을 최고 권력으로 본다. 실제 그럴까? 판사 손으로 몇 자 끄적인 판결 하나에 대통령이 구속되고, 다시 풀려난다. 헌법재판소 판사
손에 대통령 파면이 달렸다. 입법권을 입맛대로 휘두르는 정당 대표도 판사의 자의적 판결 문구 하나에 운명이 갈린다. 그렇다면 권력 중의 권력은 사법부 판사 아닌가? 플라톤의 『국가(Politeia)』에서 법치 수호자의 역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언급을 살펴본다.

◆런던 하이드파크, 1969년 7월 킹크림슨 공연
20세기 전반기까지 지구 경찰을 자임하던 영국 수도 런던으로 가보자. 국왕이 거주하는 버킹검궁 동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하이드 파크. 시계추를 1969년 7월 5일로 돌려 본다. 50만여 명의 군중이 몰린 가운데, 당대 최고 인기그룹 롤링 스톤즈의 공연이 펼쳐졌다. 오프닝 공연으로 결성 1년도 안 된 무명 밴드 킹크림스(King Crimson)이 무대에 올랐다.
시대상을 고발하는 함축적인 가사에 파격적인 사운드의 「에피타프(Epitaph, 비문)」가 청중들의 강렬한 호응을 얻으며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록의 개막을 알린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향을 내는 악기 멜로트론의 신비한 사운드에 감성적인 아르페지오 기타 선율, 여기에 읊조리듯 절규하는 로맨틱 보컬이 결부된 9분짜리 명곡 「에피타프(Epitaph, 비문)」의 클라이맥스 부분 가사를 보자.
정치 사회적 불안 속에 권력자들을 조롱하는 자조 섞인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모든 인류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네 아고라 베마와 B.C399년 소크라테스 재판
"인류의 운명이 바보들(권력자들) 손아귀에 놓였다"는 구절을 되뇌이며 무대를 그리스 수도 아테네로 옮긴다. 2500년 전 국민 주권의 직접 민주주의를 구가했던 아테네 정치의 심장부, 고대 아고라(Agora)와 그 앞 프닉스 언덕으로 가면 정치 연설단 베마(Bema)가 오롯하다.
2500여 성상(星霜)이 무색하게 지금도 연설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아테네 국민이면 누구든지 오를 수 있던 베마에서 아크로폴리스 방향으로 300여m 발걸음을 옮기면 고대의 법정 헬리아이아(Heliaia)가 나온다. 바로 이곳에서 B.C399년 소크라테스가 사형판결을 받았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은 재판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사람은 3명이다. 젊은 시인 멜레토스, 배후에 있는 정치인 아뉘토스와 뤼콘. 죄목은 2가지. 소크라테스가 1)아테네 신들에 대한 불경죄를 저질렀고, 2)아테네 청년들 타락시켰다는 혐의다.
유무죄를 가리는 배심원(디카스트) 1차 평결 결과는? 소크라테스 스스로 30표만 더 받았으면 무죄라고 언급한 내용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나온다. 구체적인 숫자를 밝힌 사람은 3세기 로마 시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다. 배심원 판결은 280대 220으로 유죄가 많았다는 것이다. 형벌의 종류를 정하는 배심원단 2차 판결이 열렸다. 소크라테스는 360대 140으로 사형이 확정된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소크라테스 사형 장소 '국가 감옥'
법정 헬리아이아에서 300여m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대 '국가 감옥' 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마시고 숨을 거둔다. 현장에 가보면 터만 썰렁한 가운데 18세기 말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양식을 집대성한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걸작 「소크라테스의 죽음(La Mort de Socrate, 1787년 작)」 사진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마시기 직전 역사적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129.5cm × 196.2cm 유화 작품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MAN)에서 소크라테스 추모객들을 만난다.


◆플라톤 아카데미 설립, 교육과 저술
소크라테스가 최후를 마친 감옥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15분여 가면 아카데미(Academy)에 이른다. 플라톤이 B.C387년 경 세운 서양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다. B.C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뒤, 절망한 플라톤이 지중해 각지를 유랑하다 돌아와 설립했다.

플라톤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겼다. 책을 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플라톤의 방대한 저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묻힐 뻔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에서 제자들과 이 위대한 업적을 넘기는 모습을 담은 2개의 시각 예술품을 들여다보자.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철학자들', 바티칸 '아테네 학당'
먼저, 이탈리아 아름다운 항구도시 나폴리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스인들이 B.C6세기 개척한 신도시 나폴리(Napoli, 그리스어 Nea Polis)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가면 폼페이에서 출토한 B.C1세기 모자이크 작품이 맞아준다. 「철학자들(Philosophers)」. 플라톤과 제자들을 묘사한 헬레니즘 말기 모자이크 예술의 걸작이다. 오른쪽 상반신을 드러내는 그리스 특유의 히마티온을 입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장면에서 인류사 철학의 태두 플라톤의 진면모가 느껴진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 박물관의 스탄차 서명실로 가보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를 받아 라파엘로가 1509년-1511년 완성한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이 르네상스 미술의 진수를 펼쳐 보인다. 균형미와 사실성, 완벽한 구도의 르네상스 예술에 담긴 인물들을 보자.
가운데 소실점에 플라톤과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으며 토론하는 소요학파(逍遙學派)의 모습이 담겼다. 플라톤의 왼쪽에 대머리의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과 특유의 대화를 통한 변증(辯證, dialectics) 방법으로 교육중이다. 바닥에는 무소유 철학의 창시자 디오게네스도 보인다

◆플라톤 국가, 소크라테스 "국가 수호자들은 청빈, 검소, 도덕"
이제 플라톤의 『국가(Politeia)』 4권을 펼친다. 플라톤의 큰형 아데이만토스가 정치인의 덕목을 묻자, 소크라테스가 답한다. "정치인들은 양식 외에 따로 보수를 지급받지 않고, 외국 여행도 할 수 없으며, 여자 친구에게 선물도 못하고,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그런 일에 돈을 쓸 수도 없다". 정치인의 덕목이 청빈, 검소, 도덕이란 얘기다.
이 대목에서 횡령 확정판결을 받고도 후원금을 돌려주지 않는 윤미향 의원(3월 6일 조선일보 단독), 지난 2월 19일 재산 축소 신고 혐의로 1심에서 22대 국회 첫 당선무효형을 받은 이상식 의원, 2월 28일 1심에서 대출 사기 등의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은 양문석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오른다.
◆플라톤 국가, 소크라테스 "법과 국가 수호자 제역할 못하면 국가 망가져"
『국가(Politeia)』 4권에 소크라테스가 아데이만토스에게 들려주는 더 중요한 이야기. "법과 국가의 수호자들이 사실은 수호자가 아니면서 수호자인 척하면, 국가는 분명 완전히 망가진다". 법치 수호의 최후 보루는 사법부 판사다. 그들 손으로 쓴 판결문이 개인은 물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법복을 입고 원칙 판사인 척 시늉만 하는 순간 국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1748년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에서 설파한 3권(입법, 행정, 사법)분립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하지만, 사법부의 자의적 판결 앞에 모두 한갓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게 대한민국 헌법과 법치 체계의 한계다.
헌법이 정한 독립 기관, 가령 선관위가 자식들로 가족 회사를 만들고, 비리를 저지르고, 부정선거 의혹 해소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정보를 주권자 앞에 공개하지 않아도 헌법재판소 판사들이 괜찮다면 그만인 법치 시스템. 킹크림슨의 「에피타프」를 다시 꺼낸다.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인류의 운명이 바보들 손아귀에 놓였다)". 국민이 헌법재판소에 있을지 모를 바보들의 손에 국가의 운명이 망가지는 것을 가수 나미의 외침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바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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