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엄재진] '나랏일'과 '선비다움'

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나랏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선비답지 못하다."

안동 지역 유림 사회에 '선비다움'에 대한 화두가 던져지고 있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천년 유교문화 경전각'(이하 경전각) 건립 대상지를 둘러싼 유림 사회의 의견이 모아지는 과정에서 공론화에 앞서야 할 한 유림 지도자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다.

1천억원 규모의 경전각 건립 사업은 지난 2021년 12월 28일, 당시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경북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참석차 안동을 찾아 유림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약속한 사업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수장고 시설 부족, 세계기록유산과 각종 국학 자료의 통합적 관리와 활용 필요성을 건의했던 유림 인사들에게 윤석열 당시 후보가 사업을 약속한 것.

이후 경북도는 공약 사업으로 건의, 정책적 타당성 연구와 건립 기본 구상을 거쳐 지난해 말 기본계획 및 타당성조사 연구 용역을 끝내고 2월 보고회를 가졌다.

이 용역에서 도청 신도시 일대를 건립 대상지로 분석과 적정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동지역 유림 사회가 공론화 과정을 통한 건립지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안동 지역 유림 사회는 대부분 '도산권역'에 건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도산서원과 한국국학진흥원, 선비문화수련원, 월천서당, 안동국제컨벤션센터와 유교선비문화공원 등 국학·유교 관련 시설이 밀집된 대표적 유교문화 성지에 경전각을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과정에서 공론화에 앞서야 할 일부 지도자가 '선비다움' '체면'을 앞세워 뒷걸음질치면서 비난과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나랏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선비'답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안동 유림 사회는 '실천'과 '공론화의 중심'에 서 있을 때 '선비답다'고 말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유교 이념을 실현하는 인격을 선비로 확립했다. 조선시대 들어 선비는 사회의 지도적 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적 책임이 주어졌다.

유학의 도를 강론하고 실천함은 물론, 전문 지식과 도덕적 양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공론을 이끌 책임도 있다.

특히, 현대적 선비라 함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리사욕을 없애고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에 대한 책임 의식으로 변화를 향한 실천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조선 선비들이 목숨 걸고 올렸던 7차례의 '만인소' 가운데 5차례의 상소 운동은 영남 지역을 근거로 했다. 첫 만인소인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는 호계·병산·도산서원 등 안동 지역 서원에서 상소 운동이 시작됐다.

이는 사회적 공론을 거쳐 나랏일에 대해 '이래라저래라'를 건의했던 '선비다움'의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정부와 경북도가 하는 일에 유림 사회가 의견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선비답지 못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사회적 공론을 외면한 꼴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일신과 영달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난마저 들을 수 있는 처사다.

안동 지역 유림 사회는 경전각이 어떻게 하면 '현대 유산'을 '미래 가치'로 더 잘 알릴 수 있을지를 공론화해 보자는 것이다. 어디에 지을지, 어떻게 활용할지를 유림들이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안동의 유림 사회는 '선비다움'을 앞세워 뒷걸음질치는 유림 지도자에게, 안동 유림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갔던 호계서원 논란에서 '중재'와 '공론화'를 외면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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