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김지효] 일어난 뒤에야 보이는 것들

김지효 사회부 기자
김지효 사회부 기자

기자라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비보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 비판과 감시의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사회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타성에 젖지 말아야 함은 분명하나, 반복되는 일상에 종종 섬세함을 놓치기도 한다.

우리가 접하는 사건·사고는 대개 처음 발생한 일이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미처 문제 삼지 못했다거나, 수차례 조명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지나 관심이 사그라들었을 뿐이다. 일어난 뒤에야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어린이를 위협하는 요소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대구 달서구 한 스쿨존에서 초등학생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해당 스쿨존은 공원과 맞닿은 유치원 앞 이면도로였다. 사고 현장에 방문해 만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보행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변에 놀이터가 없어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공원엔 안전 펜스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문구가 쓰인 좁은 이면도로 아스팔트 위에는 불법 주차가 만연했다.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단,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고 위험한 골목길이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대구 스쿨존에서 만 12세 이하 아동이 교통사고를 당한 건수는 모두 88건이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등 안전운전 불이행이 40건,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28건, 신호위반은 9건이었다. 일반 교통사고보다 아동의 스쿨존 교통사고에서 중상 사고 비율이 두 배가량 높은 점도 눈에 띄었다. 한 전문가는 스쿨존에서도 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만 속도를 줄이는 운전 성향을 문제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운전자 개인에게만 사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지난 2023년 기준 대구 유치원·어린이집 스쿨존 311곳 중 어린이들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도로반사경이 없는 곳이 152곳으로 절반이 넘고, 불법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미설치된 곳은 260곳으로 전체의 88%에 달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속도제한 표지판이 없거나 미끄럼 방지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어린이들이 보행 시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는 증언은 충분했다. 스쿨존과 통학로 상당수가 이면도로에 해당하고, 불법 주정차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이 없어 보호자들만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간 상존해 왔던 문제점은 소중한 생명을 잃고 나서야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대구시는 3월 한 달 동안 대구 전체 스쿨존에서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에 나서며, 대구 9개 구·군은 올해 고정형 폐쇄회로(CC)TV 신규 설치 대상에 스쿨존을 우선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행정 당국 차원에서 문제 개선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나,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다. 한순간에 아이를 잃은 보호자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달서구 사고 현장 한쪽에는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사건의 원인을 분석한 뒤 재발 방지를 위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만큼이나 피해를 입은 이와 그 가족의 마음, 후일담을 전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과업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가 문제점을 잊지 않도록,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눈길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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