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장우영] 전환기의 시대정신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초유의 비상계엄 발발 100일을 넘어 대통령 탄핵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계엄과 포고령, 대통령과 국무총리 탄핵소추, 대통령 체포와 구속, 헌법재판소의 속도전과 오염된 증언은 하류 정치 드라마다. 급기야 대통령 구속 취소는 절차적 오류가 응축된 결정판이다.

이렇듯 매 단계에서 불거진 절차적 결함은 탄핵심판 결과 불복의 빌미를 낳고 있다. 탄핵심판 결과를 넘어 그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실현하는 것은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출발이다.

나아가 대통령 파면 여부와 그로 인한 권력 향배에 가려진 화두를 꺼내 들어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조기 대선'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개헌'이 금기어다. 이 엄중한 시국에 진영의 대오를 흐트러뜨리지 말라는 적대적 공생 세력의 억압 탓이다. 그러나 탄핵심판 이후에도 지속되는 친윤(친윤석열)과 친명(친이재명)의 공생은 이 드라마의 가장 나쁜 엔딩(ending)이 될 것이다. 즉 전환기 정의는 양극화 세력의 청산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민주주의 지수 2024' 조사에서 한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었다. 전년도 '완전한 민주주의'(22위)에서 10단계 추락한 결과다. EIU는 "계엄은 37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여야의 극단적 대립과 타협 불능 상태는 정치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고, 정치 폭력과 사회 불안정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적은 전환기 정의의 출발과 목표를 상기시킨다.

탄핵 정국은 대통령이 자초했다. 군을 정치로 끌어들인 행위는 씻을 수 없는 잘못이다. 나라 안팎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계엄 통치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비상계엄과 같은 방식은 절제되고 회피되어야 마땅하다. 계엄을 계몽령으로 칭송해도 그 본질은 대통령 리더십과 정치력 부재를 가리킨다. 정치적 반대 세력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집권당을 행동대로 전락시킨 것은 흘러간 옛 노래로 치부되지 않는다. 더욱이 탄핵심판 이후에도 채 상병 순직과 최재영, 명태균 스캔들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대표 방탄은 비상계엄의 불쏘시개였다. 그의 사법처리를 방탄하기 위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당내 비판 세력을 수박으로 조리돌렸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이견 집단을 숙청하고 "비명계 움직이면 죽인다"는 극언으로 당을 장악했다. 그 사이 국회는 탄핵 공장으로 내려앉고 국정은 마비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 인용이 이 대표 집권의 발판이 되는 극적인 타이밍에 강성 지지층이 적대적 공생을 부르짖고 있다.

대통령이 파면을 면한다 해도 유감스럽게도 그의 정치적 실책은 면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정부의 국정 동력은 이미 소진되었고 반대층의 규탄으로 날을 지새울 것이다. 반대로 이 대표의 집권은 이 나라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숱한 범죄 의혹 판결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집권은 방탄 정부의 등장을 뜻한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친명 단점 정부(unified government)가 신권위주의로 퇴행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거부권과 탄핵으로 얼룩진 적대적 공생의 리더십이 탄핵심판과 더불어 한국 정치에서 퇴장해야 할 이유다.

윤 대통령이 최후 변론에서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87년 체제는 세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을 빚어낸 구조적 원인이다. 더 이상 이 비극을 청산하는 사회 대개혁을 미룰 수 없다. 그 첩경은 권력의 집중과 절차적 결함을 치유하기 위한 헌법 개정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권력구조 개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이를 넘어서는 헌정 체제의 개혁으로 나아갈 때이다. 탄핵심판 결과 승복을 천명하고 '개헌 대 반개헌, 국민 통합 대 진영 갈등' 구도로 정치과정을 재편해야 한다. 그리하여 적대적 공생 청산과 사회 대개혁으로 7공화국을 맞이하자. 이것이 전환기의 시대정신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