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Ghetto·유대인 거주 지역)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나치의 만행을 사죄하는 의미임을 지켜보는 모두가 알았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각인된 일명 '바르샤바 무릎 꿇기'다. 독일 슈피겔은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던 그가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할 용기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사죄에 인색한 일본이지만 2015년 8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옛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본의 사과 방식으로 퍼뜩 떠오르는 것 중에 머리를 땅에 찧을 듯,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 '도게자(土下座)'가 있지만 그의 진정성은 옳게 전달됐다. 일회성 사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에도 원폭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경남 합천을 찾아 그는 고개를 숙였다.
말이나 글로 전한다면 구체적이며 간결해야 한다. 모호한 표현은 논란을 부르기 마련이다. 1990년 아키히토 일왕이 내놓은 "통석의 념(痛惜の念)을 금할 수 없다"는 표현은 한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일본에서는 '매우 슬퍼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생각'이라 풀이되지만 아랫사람에게 하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사죄의 의미는 휘발(揮發)됐다.
직장인들의 경위서 혹은 시말서에도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과정에 초점을 두지만 복합적 반성과 향후 각오가 들어가야 한다. 작문 실력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다. 여자 친구의 "네가 뭘 잘못했는데?"를 제압할 만큼의 설복력(說伏力)을 갖춰야 한다. '미안하다. 그런데 너도 잘못했다'는 식은 사과가 아니다. 실언이다.
선관위가 최근 내놓은 사과문도 그랬다. 신뢰 회복 방식을 모르는 듯해 측은할 정도였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과문마저 '검토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체적이지 못한 다짐이 들어 있었다. 2022년 대선의 '소쿠리 투표' 때도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부실 투표 논란에 침묵했고, 선관위는 "법과 규정에 따랐고 부실 소지는 없었다"는 사과문으로 여론을 악화시켰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고 습관이다. 진정 어린 사과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사과하라니 하는 모양새다. 사과받는 입장에서는 괘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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