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오후 6시 대구 수성못 일원.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60여 명의 사람들이 호수 둘레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전력 질주하는 사람, 가볍게 달리는 사람, 산책하듯이 걷는 사람 등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저마다 속도와 방법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함께 달리며 건강을 챙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달리기'를 위해서다. 아름다운 달리기의 중심에는 경북대사범대학부설중학교(이하 경대사대부중)에서 근무하는 이재훈 교사가 있다.

◆학교 넘어 전국으로 퍼져가는 달리기
아름다운 달리기는 이 교사가 동료 교사와 제자, 지역 주민들과 함께 달리면서 기부도 하는 달리기 실천 프로그램이다.
이 교사는 17년 전 체육 교사로서 교단에 첫 발을 내딛으며 수업 준비와 체력 관리를 위해 수성못에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본 동료 체육 교사와 지인들이 2021년 1월부터 달리기에 동참했다. 달릴 때마다 자발적으로 최대 1천 원씩 내고 연말에 기부도 했다.
아름다운 달리기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학교 프로그램으로 공식 운영되면서다. 이 교사는 2022년 황금중 근무 시절 학생들이 달리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자 학교 측의 허락을 받고 해당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지난해부터는 경대사대부중으로 옮겨와 매일 아침 달리기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원세빈 경대사대부중 3학년 학생은 "작년 4월부터 수업 시작 전 선생님,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고 있다"며 "아침에 등교해 책상에 바로 앉으면 졸릴 때가 많았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잘 졸지 않고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달리기는 학교 밖으로도 퍼져나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교육부·교육청의 체육 교육 행사 등 다양한 경로로 입소문이 나자 다른 학교 교사들도 달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 2022년 전국 7개 학교에서 시작해 2025년 현재 17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아름다운 달리기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졸업생과 지역 주민들도 달리기에 동참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이 교사는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랜선 아름다운 달리기' 프로그램을 별도로 만들었다. 참가자들이 각자의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장소에서 달리기를 한 후 인증샷과 기부금을 보내는 방식이다.
이 교사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학생들을 육성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목적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달리기가) 널리 전파되어 기쁘다"며 "사람들에게 신체 활동을 독려하고 자발적인 기부를 통한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전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달리기 통해 긍정적 변화 보이는 아이들
이 교사는 달리기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신체 건강은 물론 정서적인 안정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학생들은 교실에서 긴 시간을 앉아서 생활하느라 신체 활동을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신체 활동의 감소는 민감한 사춘기 학생들의 정서적 문제와도 직결된다.
그는 "비 오는 날 교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운동장에 나가 활동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넘치는 에너지를 교실이나 복도에서 분출하기 때문"이라며 "달리기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 좋은 호르몬을 분출해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교내 학생들의 생활 지도에도 달리기가 큰 도움이 된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나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평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달리기를 하며 자연스레 털어놓는다는 것. 또 달리기를 하며 실천하는 기부 활동도 이웃에 대한 배려, 나눔을 통한 보람 등 긍적적인 감정을 심어준다.
도나율 경대사대부중 2학년 학생은 "소액이지만 매달 자발적으로 기부하다 보니 내가 이웃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고 했다.
이 교사는 "교실 등 갇힌 공간에서 상담하는 것보다 신체 활동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이 마음을 훨씬 더 쉽게 여는 것 같다"며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름다운 달리기를 통해 모인 금액은 저소득층 학생, 장애를 가진 학생 등 지역의 취약 계층을 위해 쓰인다. 2021년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2023년에는 대구인재육성장학재단에 후원금을 기부했고, 올해는 광복 80주년과 제106주년 3·1절을 맞아 대구 지역 내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원했다.
이 교사는 "기부가 목적인 달리기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름다운 달리기의 본질은 신체 활동을 통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20년, 30년 동안 달리기를 이어가며 학생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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