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미친 영향력은 긍정과 부정, 애국과 매국의 양 극단을 넘나든다. 3·1운동과 독립운동사에 나타난 애국적 헌신이 있었는가 하면 일제 말기에 나타난 신사참배와 친일 매국 행위가 있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의 친미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봉에 기독교가 있었고, 제주 4·3 및 북한의 신천 학살의 비극적 현장에도 기독교가 깊이 관여했다. 군부 독재를 찬양하는 조찬기도회와 동시에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의 현장 등 역사의 어느 한 틈새도 빠지지 않고 기독교는 등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란과 폭력을 선동하는 극우적 기독교가 오늘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어찌 된 영문인가?
개화와 망국의 시절, 쇄국의 문을 두드리며 조선 반도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희생과 사랑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학교와 병원 그리고 교회를 세우며 근대화의 문을 열고 계몽과 사회변혁에 크게 기여했으며, 수많은 인재들과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했다.
캐나다 선교사 에비슨은 세브란스병원을 세우며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콜레라가 창궐하던 조선 사회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며, 그가 키워 낸 백정 출신 외과의사 박서양은 만주로 떠나 독립군 주치의가 되었다. 번역된 한글 성경은 문맹을 퇴치하고 조선 500년간 억눌린 여성들이 역사 속에서 깨어났다. 한일병탄까지 기독교가 세운 학교가 796개소였는데 그중 70~80%가 북한 땅에 세워졌으며 안창호, 손정도, 이승훈, 조만식 같은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독교는 초창기 독립운동사에도 큰 기여를 했다. 상동교회 청년회에는 장래의 민족 지도자가 될 이회영, 이동녕, 이동휘, 안창호, 주시경 등의 청년 인재가 몰려들었고 전국에 청년 교사들을 파송하여 한글과 국사를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을사늑약 이후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눈엣가시 상동청년회를 해산시키자 스크랜튼의 제자 전덕기 목사는 지하조직 신민회를 만들어 일제에 저항했다.
일제가 신민회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 105인 사건으로 검거된 600명 중에 놀랍게도 400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인구 전체의 1.5%가 채 안 되던 기독교인 중에 3·1운동 대표 33인 중 16명이 나왔다. 그 기독교가 언제 이렇게 변질되었는가?
기독교 진리의 양대 축은 예수의 개인 구원과 그리스도의 사회 구원이다. 그러나 을사늑약 이후 이토 통감이 선교사들의 사회 정치 참여를 금지시키면서, 또한 선교지 분할 정책으로 평안도 황해도 지역을 맡게 된 근본주의 장로교 미국 선교사들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상징되는 개인 구원 중심으로 기독교 진리를 축소시켰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은 북한 땅을 기독교의 성지로 만들었으나, 점차 일제의 만행과 사회정의에는 눈을 감고 복음을 내면화시켰다. 3·1운동 시 기독교의 기세에 놀란 일제는 교묘한 회유 정책을 실시하여 교회의 법인 재산권을 인정하며 목사들에게는 특권을 부여하였고, 신사참배와 전쟁을 칭송하고 전쟁터로 청년들을 내모는 친일 매국적 교회로 만들었다. 반면 신민회와 105인 사건 이후 탄압을 받아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은 간도와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이어 갔다.
해방이 되었다. 공산 정권의 핍박 속에서 교회와 재산을 빼앗기고 분노 가운데 내려온 평안도 황해도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예장(예수교 장로회)을 세웠고, 숭실중학 출신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서북청년단을 만들어 친미 반공 극우 세력이 되었다.
약자와 가난한 자를 보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라지고 오직 예수 복음의 개인주의 개교회주의 기복신앙은 결국 사회적 괴리 현상을 가져왔고, 교회 내의 불의에도 눈을 감는 부패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하였다. 북간도의 은진중학 출신들은 기장(기독교 장로회)을 만들어 김재준, 강원룡, 문익환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크리스천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함께 만든 상해임시정부의 10조 헌장에는 3조의 평등과 4조의 자유 조항이 같이 나타나 있다. 기독교는 평등(그리스도)과 자유(예수)가 함께 있어야만 그 진리가 온전해진다. 폭력적 극우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사회악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아니라면 로마와 결탁하여 예수를 죽인 유대교처럼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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