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 칼럼] 중국간첩은 처벌 못하는 나라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만일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중국에서 중국 정부의 관공서나 군사시설을 드론으로 촬영하다가 체포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정탐'이 아니라 방송이나 취미 활동 차원에서 한 행동이라도 말이다.

중국 공안 당국은 즉각 구금·조사한 후 간첩 혐의로 중형을 선고할 것이다. 중국의 '반(反)간첩법'은 '기밀 정보 및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 제공'을 간첩 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이익'을 위협하는 것을 규정할 권한은 오로지 중국 당국에 있어 드론 촬영은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간첩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중국에 거주하던 한 반도체 관련 업체의 주재원이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한바탕 논란이 빚어졌다.

12일 저녁 국가핵심시설로 분류돼 드론 비행 금지 구역인 정부세종청사에서 중국인 2명이 무단으로 드론을 띄워 촬영하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회사 홈페이지에 사용할 영상을 찍으려 했다"고 하자 "대공 용의점이 없다"며 과태료 처분을 하고 석방했다.

국가중요시설 최고 등급인 제주국제공항과 부산항 미국 항공모함, 국정원 등을 드론 등을 이용해서 불법적으로 촬영하다가 체포된 중국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3명이 지난해 6월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불법 촬영하다 체포됐고, 국가정보원 청사를 드론 촬영하던 중국인도 적발된 데 이어 올 1월 제주국제공항 외곽에서 드론으로 공항을 촬영하던 중국인도 있었다. 국가보안시설과 군사기지, 장비 등을 정탐하다 적발된 중국인은 장기간에 걸쳐 '스파이 활동'을 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했다.

중국에선 간첩죄로 엄중하게 처벌되는 중국인의 드론 촬영 등 주요 기관에 대한 국내 간첩 활동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형법 제 98조에 '간첩죄'가 있기는 하지만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어 '적국'인 북한이 아닌 중국인이나 외국인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다. 기껏해야 출입국관리법이나 경미한 경범죄를 적용, 과태료 처분이나 강제 출국 조치 외에는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난해 8월 국군정보사령부 공작팀장 A씨가 중국 정보 요원에게 포섭돼 수년간 2급 군사기밀인 정보사 블랙요원 신상 정보를 팔아넘긴 사실이 방첩사에 적발돼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 공작팀장에게도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어 군형법상 ▷일반 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그를 포섭한 중국 정보 요원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할 수 없었다.

국가수사본부가 지난주 공개한 반도체 등 국내 주력산업 핵심기술 해외 유출 사건 적발 자료에 따르더라도 27건의 적발 건수 중 20건이 중국으로 유출된 것이다. 필리핀 국가수사청(NBI)이 지난 8일 수백 명으로 구성된 중국 간첩 조직을 적발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필리핀 당국자는 올해 들어 중국 간첩 용의자를 8명 이상 체포했으며, 이달 추가로 8명을 체포할 예정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당국은 "모든 형태의 중국 간첩은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필리핀도 처벌하는 중국 간첩을 우리는 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도 12·12 대국민 담화를 통해 중국인의 간첩 활동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제기했다. 윤 대통령은 2년 이상 암약하면서 미 항공모함 등을 촬영하거나 국가정보원을 촬영하다 붙잡힌 중국인 사례를 열거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거대 야당이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며 "지난 정권 당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서 국가보안법 폐지도 시도하고 있다"며 중국인의 국내 간첩 활동에 대한 강한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 2022년 중국의 국내 비밀경찰서 의혹을 받은 바 있는 '동방명주' 왕해군에게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간첩죄 조항 개정에 합의해 놓고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 처리에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스스로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謝謝) 이러면 되지, 중국과 대만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어요?"라던 '친중본색'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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