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시화된 의약품 수급 불안정…대한약사회도 대책 촉구

1차의료기관에까지 통보…개원의들 당황
성분명처방 대안에 의사들 "환자 건강 위협" 반발 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대구 시내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은 최근 제약사로부터 "일부 의약품이 곧 생산 중단될 예정이니 참고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개원 이후 줄곧 해당 제약사로부터 생산한 우울증 치료제를 계속 써 왔던 A 원장은 대체 약품을 찾느라 고민이 크다.

A 원장은 "의사들이 그 약을 쓰는 이유는 환자들에게 효과가 잘 나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그와 비슷한 약을 또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성분명이 같아도 배합비율이나 원료의 질, 생산 과정의 차이 등에 따라 환자에게 통하는 게 조금씩 달라서 다른 약을 찾는 게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의약품 수급 불안정이 1차 의료기관인 의원에서까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심각하다. 대한약사회는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13일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열린 제71차 약사회 정기대의원총회에 참석해 이러한 요구를 담은 성명서 작성을 결의했다.

대의원들은 성명서에서 "코로나19 종식 이후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의약품 수급 불안정 현상은 오히려 더 많은 품목에서 더욱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며 "원료 공급 부족, 낮은 보험약가, 제약사 생산 라인 부족 등 갖가지 이유로 주문할 수 없는 의약품이 늘어만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의약품 수급 관리 컨트롤타워 부재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이 제약, 유통, 약국으로 의약품 수급 불안정 현상의 책임을 미루고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의료 대란'에 이은 '약료 대란'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 제기돼왔던 문제다. 그 때는 펜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불안정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제약사들이 해외에서 원료 수입 시 한국의 낮은 약가로 인해 원료의 양을 적게 공급받게 되고, 이로 인해 의약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약사 3천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약사 중 23%가 수급불안정의 원인으로 제약회사의 생산과 공급 마비로 꼽았다.

또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해 1월 발간한 산업 보고서 '글로벌 이슈 파노라마' 제 8호에 따르면 원료의약품의 경우에는 지난 2022년 국내 자급도가 11.9%로 2021년 24.4%보다 절반이상 축소되었고, 이는 원료의약품 자급도 통계가 공개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복제약이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특허가 개방된 원료에 한해 가능한 이야기"라며 "요즘 글로벌 제약 회사들은 원료에 분자 구조만 살짝 바꾼 뒤 특허를 갱신하는 방법으로 특허를 방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복제약 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수급 불안정에 대한 대안으로 '성분명 처방'을 제안하고 있지만 의사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동일 성분을 가진 의약품이라도 제품에 따라 임상 효과나 부작용이 다르고 환자에 따라서도 복약 순응도에 차이가 발생한다"며 "의사는 환자의 건강 상태나 유전적 환경적 요소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축적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의약품의 효능을 살피고 조절해가며 처방을 내리고 있기에 성분명 처방만으로는 환자의 건강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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