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적 삶의 현장을 그린 그림을 한때의 세상 풍속일 뿐이라는 풍속화로 부른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조영석은 윤두서와 함께 풍속화의 선구자다. 화가가 자신이 목격한 주변의 일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윤두서와 조영석 이전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과 주변의 일이 회화라는 고상한 예술이 되기엔 사소하고 하찮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조영석은 그런 통념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자신이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조영석의 풍속화는 "그림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에서 나왔다. 조영석은 전해오는 그림을 보고 그리는 '이화전화(以畵傳畵)'는 잘못된 것이므로 베껴 그리기의 틀에서 벗어나 사물을 직접 마주 대해 참 모습을 그리는 '즉물사진(卽物寫眞)'을 해야 살아있는 그림인 '활화(活畵)'가 된다는 소신을 가졌다. '이화전화', '즉물사진'은 조영석의 그림에 대한 소신을 명쾌하게 전달해준다.
전해오는 옛 그림의 보증된 권위와 관습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본 현실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상고(尙古)주의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를 의미 있게 여기는 상속(尙俗), 상실(尙實)의 가치관에서 나온 새로운 회화관이다.
조영석은 자신의 회화관을 소신 있게 실천한 선구적인 풍속화를 남겼지만, 노송 아래 이끼 낀 바위에 기대 책을 읽는 고사(高士)를 그린 '송하독서'는 현실의 한 장면은 아니다. 모자와 옷, 신발은 옛 그림에 나오는 고풍스런 차림이다. 그러나 얼굴과 표정은 누군가를 모델로 한 것처럼 실감 난다. 자세히 보면 아래턱이 살짝 각진 윤곽, 도톰한 귓볼까지 그린 커다란 귀의 생김새, 성근 눈썹, 눈동자 방향이 책을 향한 눈망울 표현, 코와 콧수염 아래의 입술, 성글지만 힘 있게 뻗친 콧수염과 턱수염 등이 간략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송하독서'는 원래 부채그림이었다. 조영석의 그림이 있는 이 부채를 사용하던 소장자는 부채에서 선면을 떼어내 그림이 그려진 핵심적인 부분만 직사각형으로 오리고 네 모서리까지 잘라내 특이한 모양의 그림이 되었다. 이렇게라도 조영석의 작품이 남았다는 다행한 마음과 제대로 보존됐더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두 줄의 제화와 서명, 인장을 화면 오른쪽에 적어 넣으면서 왼쪽부터 써나가 색다르다. 제화는 '한가하면 나의 책을 읽는다'는 '신한독아서(身閒讀我書) 종보(宗甫) 사(寫)'이다. 종보는 조영석의 자(字)다. 인장은 호를 새긴 관아재(觀我齋)다. '나를 관찰한다'는 조영석의 호 관아재처럼 '아서(我書)'는 뚜렷한 자기중심성을 보여주는 어휘다.
소나무 아래 바위에 기대앉아 내가 좋아하는 나의 책을 읽는다고 한 이 인물의 생생한 얼굴이 혹시 조영석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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