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의정갈등은 해결이 요원하다. 정부의 의료개혁 방안이 문제가 많다고 느껴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은 병원 바깥에서 우리나라의 의료가 점점 난맥상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다. 이들을 단지 '의대 정원 증원이 부당하다며 사직으로 떼 쓴다'고 몰아붙이기에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동안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전공의들 또한 1년동안 병원을 떠나면서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문제점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해 보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일자리도 알아보지만 오히려 병원 밖은 수련 과정보다 더 힘들다는 게 사직 전공의들의 공통된 느낌이었다.
어렵사리 사직 전공의 2명을 만나 1년 동안 느꼈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익명을 요청했기에 편의상 A, B씨로 칭한다. A씨는 지난해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에 임용됐지만 임용을 포기한 상태고 B씨는 인턴 과정을 끝내고 레지던트 임용을 앞두고 의정갈등 문제로 임용을 포기했다.

◆ 1년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건 좌절감
두 사람 모두 1년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좌절감'이라고 했다. 이들은 2020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의료계가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시기에 학부생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의료계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반영한 정책이 나올거라 기대했지만 지난해 2월 필수의료 패키지의 뚜껑을 열어보니 의료계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은 탁상공론이었다는 점에 젊은 의사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특히 가장 상처받은 표현이 '낙수효과'라고 말한다. 사람 살리는 진료과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고, 사람이 부족한 필수의료과는 더 존중받아야 하는데 이를 경제논리에 입각한 채 '떨이'로 취급당하는 게 너무 속이 상하다는 것.
"저는 본과 4학년 때부터 일반외과를 가려고 준비했어요. 주변에서 힘들다고 말렸지만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 게 보람이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낙수효과'라는 말을 듣자마자 저의 결정이 마치 실력이 모자라서 떠밀리다 안착한 것으로 치부됐더라고요.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B씨)
의료인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디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의료개혁의 문제점을 사람들에게 말해도 설득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또 좌절을 느낀다.
"의료개혁 문제가 여러 단체들이 엮인 이야기들이잖아요. 의료계, 정부, 보험사까지 엮인 이야기니까요.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면 친구들이 '2천명이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데까지는 이해를 해 주더라고요. 반복해서 말해줘야 하니 어쩔 때는 '녹음해서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A씨)

◆ 병원 밖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더라
수련병원을 나온 전공의들은 일반의로 취직을 했든, 다른 직업으로 돈을 벌든, 백수로 지내든 그 과정에서 세상의 냉혹함을 더 심하게 겪었다고 말한다. 특히 일반의로 취업을 하려 해도 고연차거나 운이 좋으면 수련 때만큼 받는 정도의 월급으로 먹고 살 수 있지만 대부분은 전공의 때보다 훨씬 못한 처우를 받기도 한다.
A씨는 일반의로라도 취업하기 위해 전국 100여곳의 병·의원에 이력서를 넣었다. 이 중 면접 기회를 준 곳은 10곳 정도였지만 말도 안 되는 처우에 지금은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서울 지역 한 피부과의원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주 5일 근무에 월급 30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서울인데 일반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보다 월급이 적더라고요. 일반의 공급이 늘어난 건 맞으니 임금이 내려간다 치더라도 선배 의사들이 후배 의사들의 노동력을 임금 후려치기를 통해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허탈했어요."(A씨)
출산을 앞둔 B씨도 걱정이 많다. 본인도 출산을 준비하느라 전공의 사직 후 진료 보조 업무를 맡았던 유방외과 의원을 그만뒀고, 군의관 전역을 앞둔 남편도 아직 인턴 수료만 하고 군대를 간 탓에 레지던트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사실, 좀 불안해요. 남편도 전역 후에 취직 자리를 알아봐야 하고 저도 출산 이후에 돈 벌 방법을 고민해야 하니까요. 만약 남편도 전역 후에 자리가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해결 안 된 상황에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걱정이 많죠."(B씨)

◆ 세상에 대해 신뢰가 깨졌다
사직 전공의 두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증명해 준 사실이 하나 있다면 '필수의료과 전공의일수록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낮은 수가, 소송 위험 등이 필수의료과를 기피하는 원인이었지만 의료개혁을 행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도저히 필수의료가 살아날 거라는 희망을 접어버린 전공의들이 더 많아졌다고 말한다.
"필수의료과를 지원한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수련의 의미를 더이상 못 찾겠다'고 말해요. '필수의료'라고 말하지만 정작 필수의료를 한다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은적이 없거든요. 교수님들이 밤을 새 가면서 노력했는데 환자가 더 좋아지지 못한 상황에서 보호자들이 소송 운운하면서 '최선을 다 한 게 맞냐'라고 소리치는 걸 보면 그런 마음 먹는 것도 특이한 일은 아니죠."(B씨)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겪었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지금도 깔려서 작용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태는 길어지고, 말은 안 통하고 그러다보니 의대생과 전공의 안에서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갈 데까지 가 보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반수나 타 전공을 졸업하고 의대 온 학생들은 아예 의대 오기 전 전공으로 돌아간 케이스도 봤어요."(A씨)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단지 정원 동결 등 '벌린 저지레 닦아내는' 식의 방편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목소리였다.
"의대 2천명 증원을 포함해 모든 의료 관련 정책이 저희들에게는 '통보'라 느껴졌고 의료계의 이야기를 듣고 법을 정한 게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일단은 전부 백지화 한 후에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A씨)
"정부의 약속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의대생도 전공의도 복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2020년 때 의대 정원과 같은 부분은 의료계와 충분히 상의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전 정권 일이라고 모른척한 부분처럼 말이죠. 게다가 24·25학번의 교육에 대한 해결책도 제대로 제시되지 않은 점도 불신을 더 키웠어요. 적어도 의료개혁을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아요."(B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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