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분도(대구 중구 동덕로 36-15 3층)가 못으로 몽환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유봉상 작가의 개인전 'Greenland'를 열고 있다.
작가의 주 재료는 물감이 아닌, 흔히 물건을 걸거나 단단히 고정하는 데 쓰는 못이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못 작업을 해온 작가는 25년 간 추상적인 패턴부터 고풍스러운 건축물, 울창한 숲과 파도, 열대우림 등 자연의 형상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깊고 어두운 숲과 펼쳐진 책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겨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어딘가 모르게 붓질 이상의 깊이가 느껴진다. 작품에 점차 가까이 다가갔을 때, 관람객들은 그 깊이감을 만든 것이 바로 못이라는 것을 알고 경탄한다.
작업 과정 역시 붓과 물감을 이용하는 작업과 확연히 다르다. 무거운 판넬을 기계를 이용해 세운 뒤, 그 위에 에어타카로 15㎜의 핀못을 반 정도만 박아넣어 7㎜ 길이를 남긴다. 때로는 빽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자리한 못은 색채와 더해져 특별한 시각적 효과를 전한다.
정수진 갤러리분도 큐레이터는 "약 30만개의 핀못으로 형성된 7mm의 빽빽한 그늘, 그것이 만들어낸 빛은 보는 이의 시선과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며 "가까이에서 또는 좀 더 거리를 두고 보는 것, 옆에서 또는 정면에서 보는 것 등 그때그때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그가 보여주는 결과물에 한 번, 작가가 이러한 결과물을 만든 과정을 짐작해보며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작가는 숲에서 직접 사진을 촬영하고 고른 뒤, 수십만 개의 못을 박는 고단한 노동의 시간을 거친다. 둔탁하고, 어쩌면 폭력적인 과정이 필연적인 작업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누구보다도 섬세한 세계를 창조해낸다.
특히 그의 작품은 깊고 어두운 숲을 조망함에도, 마치 내면의 힘을 보여주는 듯한 환한 빛을 느낄 수 있다. 정 큐레이터는 "작가의 숲은 깊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장소의 상징이나, 작품 속 환한 빛을 따라 나도 저곳으로 가서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누구나, 언젠가, 분명히 꿈속에서 봤을 법한 장면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행복했던 꿈결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외국 평론가는 "못으로 걸 수 있는 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봉상은 빛을 걸어놨다"라고 평했다. 다양한 관점에서 그의 몽환적인 작품을 바라보며 고요한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전시는 4월 11일까지. 일요일 휴무. 053-426-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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