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접고 그려서 조각을 만들다…고(故) 김인겸 개인전

4월 19일까지 우손갤러리

우손갤러리 전시장 전경. 우손갤러리 제공
우손갤러리 전시장 전경. 우손갤러리 제공
김인겸, Space-less, 2016, acrylic ink on paper, 79x109cm.
김인겸, Space-less, 2016, acrylic ink on paper, 79x109cm.
고(故) 김인겸 작가. 1992년, 현재 아르코미술관인 서울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공간 전체에 설치한
고(故) 김인겸 작가. 1992년, 현재 아르코미술관인 서울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공간 전체에 설치한 '프로젝트-사고의 벽' 작품 속에 직접 초를 켜는 모습이다. 우손갤러리 제공

평면은 입체와 공존할 수 있는가? 평면은 조각이 될 수 없는가? 조각과 평면 작업은 어떻게 다른 개념이며, 어떤 부분에서 이어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천착하며, '덩어리의 예술'이라 여겨지는 전통적인 조각 개념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조각 어법을 구현해온 고(故) 김인겸(1945~2018) 작가의 개인전 '조각된 종이, 접힌 조각'이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이 대구를 찾은 것은 2005년 시공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20년 만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996년 한국 작가 최초로 퐁피두센터의 초청 연수를 받아 파리에 정착한 이후 변화한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그는 파리에서 아틀리에와 숙소를 제공 받는 등 다양한 지원이 있었지만 기존에 주로 사용하던 돌, 나무, 브론즈 등 무겁고 다루기 힘든 재료로 작업하기엔 쉽지 않은 환경에 마주한다.

낯선 도시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잠시, 그는 의외의 소재에서 돌파구를 찾아나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그의 딸 김재도 홍익대 초빙교수는 "아버지는 어려울 때일수록 쉬운 것에서부터 답을 찾아야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답은 얇고 가벼운 종이 한 장이었다. 그는 종이를 자르고 휘게 해 면과 입체의 연결성을 돋보이게 하는 등 독특한 조각 어법을 구현해나가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한 장의 종이, 하나의 면은 혼자 서 있을 수 없지만 '접기'라는 간단한 행동 만으로 입체로 바뀌어 설 수 있다"며 "내가 생각하는 조형은 복잡한 데 있지 않고 이런 데에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말씀이었다"고 했다.

우손갤러리 전시장 전경. 우손갤러리 제공
우손갤러리 전시장 전경. 우손갤러리 제공
우손갤러리 전시장 전경. 우손갤러리 제공
우손갤러리 전시장 전경. 우손갤러리 제공
최근 우손갤러리에서 열린 김인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작가의 자녀 김재도(오른쪽) 홍익대학교 초빙교수와 김산 작가가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최근 우손갤러리에서 열린 김인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작가의 자녀 김재도(오른쪽) 홍익대학교 초빙교수와 김산 작가가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전시장에서는 이같이 면을 통한 입체의 실험이 두드러졌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철판의 양쪽을 종이처럼 접은 'Emptiness' 시리즈는 간단한 접힘의 행위를 통해 평면과 입체의 공존을 실험한 그의 작업세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바닥에 놓인 U자 형태의 반원통형 철판은 내부가 스테인리스 미러로 마감돼 마치 텅 빈 듯한 착각을 주며, 평면에 내재된 공간성을 보여준다.

종이에서 시작된 탐색은 이렇듯 조각의 형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평면 데생의 방식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작가는 종이 위에 먹과 잉크를 묻힌 스퀴즈 작업을 통해 평면에 입체적인 형태와 공간을 구현했다.

김 교수는 "작가에게 그린다는 것과 깎거나 붙이는 조각 행위는 동격의 것이었다"며 "이는 1970년대부터 지속해온, 전통적인 조각 개념에서 탈피하려는 그의 근본적인 성찰이 만개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전시장에는 장소특정적 대형 건축조각 작업 '프로젝트'의 자료가 전시됐다. 1992년 서울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발표한 '프로젝트-사고의 벽'과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전 작가로 참여해 선보인 '프로젝트 21-내추럴 네트'의 모형과 영상을 통해, 당시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접기와 그리기라는 새로운 조각의 범주를 만들며 조각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달하고자 했던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움을 통해 묵직한 공간감을 전한다.

"요즘 나는 물감도 접고, 종이도 접고, 철판도 접는다. 그리고 공간을 만든다. 빈 공간을, 마음도 한쯤 접어놓고 텅 비어진 기분이다."(1997년 파리 퐁피두 스튜디오에서)

전시는 4월 19일까지. 일요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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