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책] 기억한다는 착각
차란 란가나스 지음 / 김영사 펴냄

[책] 기억한다는 착각
[책] 기억한다는 착각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를 찾으러, 혹은 뭘 하려 갔다가 '내가 여기 왔지?'라며 잠시 '멍~'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소득없이 다시 돌아오면 불현듯 '아~ 내가 그걸 하려 했구나' 기억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나는 바보인가, 아니면 건망증인가?' 싶겠지만 많은 이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는다.

기억이란 참 요상하다. 몇 시간 전에 먹은 점심 메뉴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주 오래전 들은 노래 가사는 또렷이 기억하는 일도 흔하다.

우리는 기억을 잊어버린 것에 좌절하고 스스로를 탓하지만, 저자는 "곧이곧대로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라는 질문 대신 "우리는 왜 기억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억이 본질적으로 선택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의 경험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경험 중 극히 작은 일부만이 기억에 포착된다. 그렇기에 뇌는 아주 신중히 기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맥락'과 '도식'이라는 틀이다.

우리의 뇌는 덩어리로 기억한다.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의 장소와 상황, 감정과 맥락을 함께 '사건의 경계선'이라는 덩어리째로 저장한다. 만약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한다면, 뇌는 새로운 맥락을 인식하며 이전 방에서의 기억을 흐리게 만든다​. 이 때문에 장소가 바뀌거나 다른 상황이 끼어들면 바로 직전까지 생각했던 대상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도식'은 반복되는 패턴이나 구조를 이용해 우리가 익숙한 환경에서 쉽게 정보를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요한 공통 요소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재활용하는 것이다.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 뇌는 매번 기억을 따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파악해 '카페에서 주문하기' 도식으로 저장한다. 이렇게 공통 요소를 도식으로 통합하면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차이점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

어제 먹은 점심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력이 문제가 아니라 특별할 게 없었기 때문이고, 오래전 노래 가사를 까먹지 않는 이유는 음악이 매우 효과적인 도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망각은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뇌가 의도한 효율적인 정보 처리 매커니즘인 것이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우리는 보통 기억이 뇌라는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저장했다 꺼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억은 사진이나 기록처럼 정확하지 않고, 훨씬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뇌는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정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데, 놀라운 점은 우리가 기억할 때와 상상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거의 일치한다. 기억과 상상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증거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단순히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량의 맥락과 되살려낸 정보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럴듯한 과거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현재 시점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기억이 변형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현재의 인식과 감정을 반영해 과거를 '다시 쓰고' 있다. 가억의 이런 특징은 때론 기억을 왜곡시키고 거짓 기억을 만들게 하기도 한다.

우리 뇌는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차이, 즉 '정보 격차'가 발생할 때 호기심이 자극된다. 호기심이 자극되면 우리는 갈증이나 굶주림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이 정보 격차를 해소하려 노력하고, 호기심이 충족될 때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키며 학습 의욕과 동기 부여를 불러온다. 이런 내용을 통해 저자는보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시수 기반 학습'이 유용하다고 조언한다. 정답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오답을 내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기억 능력을 훨씬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420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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