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이 제가 미래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만난 20대 청년의 얘기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직장인인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주말마다 전국을 다니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30대 청년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탄핵 찬성 집회에 왔다는 그 역시 미래세대를 위해서 탄핵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선배들이 이룬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화와 타협 대신 12·3 비상계엄과 같은 폭력 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 무관심층으로 꼽히던 청년들이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탄핵에 대한 입장은 제각각일지 몰라도 미래세대를 위해 일상을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모두 같다. 만 28세인 기자의 주변 친구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가 속출한다.
청년들이 거리에 나서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요소로 꼽힌다. 청년들이 정치에 멀어져 있는 사이 사회는 점차 공정하지 않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대부분 기성세대로 이뤄진 정치권은 말로만 '청년'을 외칠 뿐 정작 중요한 순간엔 이들을 외면한다.
최근에 터진 '선관위 채용 비리'는 청년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선관위의 전현직 간부들은 본인의 자녀와 친인척을 특혜 채용하거나, 특정 인물이 합격할 수 있도록 면접 점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소한 공직사회는 공정할 것이란 청년들의 믿음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당장 오늘도 수만 명의 청년들은 공직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한다. 부모의 기대와 친구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막연한 미래와 맞서기 위해서다.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 간부의 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은 이들의 시간은 과연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국회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에서 43%로 인상하는 내용의 모수개혁안에 합의했다. 이 안은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9년 정도 늦추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
청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율을 높여야 하지만 기성세대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저출산 기조가 이대로 이어진다면 청년들은 국민연금에 내는 돈만 계속 늘어나고 받는 돈은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여야 모두 선거를 앞두고 청년층에 구애의 목소리를 보내지만 청년이 체감할 만한 정책은 그리 많지 않다. 청년과 기성세대의 간극이 벌어지는 사이 실직자와 취업 준비생을 포함해 집에서 쉬는 '청년 백수'는 지난달 120만 명으로 집계됐다. 청년의 정치 참여는 다른 의미로 생존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지난 2월 10일 양도초등학교 학생들이 참관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들을 소개하자 여야 의원들은 열렬히 이들을 환영했다. 이후 몇 분이 흘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시작되자 본회의장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모습이 벌어졌다. 어쩌면 그들도 그때 느꼈을지 모르겠다. 기성세대가 밝은 미래를 만들어 주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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