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vs 이창호.
우리나라에서 바둑이 전국민적 인기를 누리던 1990년대 내내 두 사제 간의 대결이 각종 대회 결승전에서 펼쳐졌다.
26일 개봉 예정인 김형주 감독의 영화 '승부'는 이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지는 법이 없던 조훈현(이병헌 분)이 어릴 적부터 가르친 제자 이창호(유아인)와 희대의 라이벌전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조훈현이 바둑 신동으로 불리는 이창호를 제자로 맞으면서 시작된다. 조훈현은 집에까지 그를 들여 스승 역할뿐만 아니라 아버지 노릇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식이 그렇듯 머리가 굵어진 이창호는 조훈현의 뜻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는 조훈현의 화려하고 공격적인 전법 대신 "절대로 지지는 않는" 방어적인 스타일을 고수한다.
각자의 고집을 꺾지 않는 둘은 1990년 대회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리게 된다. 불처럼 뜨거운 스승의 맹공을 제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과 인내심으로 막아내고 결국 승리를 따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변에 조훈현은 얼이 빠진다. 이창호는 청출어람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조훈현과 이창호를 투톱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영화의 무게중심은 조훈현 쪽으로 좀 더 쏠려 있다. 그가 애지중지 키운 "호랑이 새끼에게 잡아먹힌" 뒤 느끼는 상실감과 수치심, 심기일전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최고의 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나 초라해지는 조훈현의 모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자기를 이긴 제자를 더는 가르칠 수 없는 스승과 자기에게 진 스승에게서 배울 게 없는 제자의 이별 역시 예정된 수순이긴 해도 착잡하기만 하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조훈현 역의 이병헌은 제자에게서 연전연패당하고 무력감에 발버둥 치는 감정 표현으로 몰입감을 높인다. 당시 조훈현처럼 이른바 2:8 가르마 머리를 한 것은 물론이고 조훈현의 자세와 사소한 행동까지 묘사했다. 이병헌은 바둑돌을 놓는 자세를 배우기 위해 프로 바둑기사에게서 개인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소리도 없이'(2020)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유아인 역시 이창호 특유의 '너드' 같은 이미지와 대국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꼿꼿함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하는 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2023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유아인의 얼굴을 반가워할 영화 팬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여론은 '승부'가 풀어야 할 난제다.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는 각종 홍보 행사는 물론이고 예고편과 스틸컷 등에서도 그를 배제하는 '유아인 지우기'에 나섰다. 바이포엠은 앞서 음주운전 물의를 일으킨 곽도원 주연의 '소방관' 개봉 때에도 같은 방식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2021년 촬영을 마친 '승부'는 당초 2023년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유아인의 기소로 보류됐다가 극장 개봉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 감독은 19일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아인에 대해 "주연 배우로서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울 수 있는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영화는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한다. 상처받은 영화에 연고를 발라주신다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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