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급가속 페달(pedal)을 밟아 달려온 헌법재판소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헌재가 워낙 속도전을 펼치니 2월말, 3월초에 선고가 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랬던 헌재가 최종 변론을 끝내고 3주가 지나도록 선고를 미루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돈다. 8대0 인용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4대4 또는 5대3 기각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추측일 뿐이다.
탄핵 기각이든 인용이든 재판관 6명 이상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면 이미 선고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헌재가 선고하지 못한다는 것은 탄핵 기각 또는 인용 어느 쪽에도 6명 이상의 재판관이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재판관 중 일부가 탄핵 반대 의견을 낼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국민 분열과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만장일치 탄핵 인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평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항소심 선고가 3월 26일로 예정돼 있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윤 대통령 탄핵을 바란다. 만장일치가 아니라 6대2라도 좋은 것이다.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우리법연구회 출신 헌법재판관들이 윤 대통령을 즉각 탄핵할 수 있음에도 한가하게 '만장일치'를 구하느라 탄핵 선고를 미루고 있을 리는 없다.
▶ 세키가하라 전투 승패를 가른 것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년 3월 17일~1598년 9월 18일)가 죽자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1593년 8월 29일~1615년 6월 4일)가 권좌(權座)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6세에 불과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몇몇 영주들이 섭정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됐고, 섭정 회의의 일원이었던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가 세력을 결집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충돌했다.
이에야스를 지지하는 지방 영주들(동군·약 10만)과 미츠나리를 지지하는 영주들(서군·약12만)이 세키가하라(関ヶ原)에서 격돌했다.(1600년 10월 21일).
양군의 포진으로 보면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서군이 월등히 유리했다. 서군이 학익진(鶴翼の陣)으로 동군을 둘러싸고, 동군은 갇힌 상황이었다. 서군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고 전투 초반 서군이 몇번 승리했다. 그럼에도 동군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면 서군을 이끄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인품이 형편 없고, 그것이 서군 내부 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예상 밖 결과를 낳은 것은 당초 이시다 미츠나리(서군) 편이었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동군)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1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온 히데아키는 이시다 미츠나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선대의 인연 때문에 고민했지만 결국 이에야스 편에 섰다. 그것으로 동군의 승리였다. 세키가하라 전투 승패를 가른 것은 양군의 포진이 아니라 히데아키가 어느 편에 서느냐였다. 세력이 승부를 가른 것이다.
▶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말은?
필자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각하(却下)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해 12월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언론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기정 사실처럼 보도했다. 세키가하라 전투 초기 서군의 승리를 예상한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끝까지 싸울 의지를 천명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 분노가 들불처럼 타오르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특히 2030세대와 개신교 교회가 탄핵 반대 투쟁에 나서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됐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은 숱한 법 위반·절차적 흠결 속에 진행됐다.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변경 (소추 동일성 위반), 헌재의 윤 대통령 측 답변 기한 보장 무시, 대통령 측 증인신청 무더기 기각(棄却), 헌재법 제32조 위반,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권 논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정치인 체포' 메모와 '의원 끌어내라'는 진술의 진위 논란, 형사소송법 준용 원칙 배제 등.
그러나 그 많은 흠결에도 민심이 받쳐 주지 않았다면 탄핵은 인용됐을 것이다. 심판 과정의 흠결들은 세월이 흐른 뒤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사기(詐欺) 탄핵이었다'는 법학자들의 논문 재료로 소비될 뿐이다. 여러 불법 논란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돌이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탄핵 반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면서 국회 의결 및 헌재 심판 과정의 문제점들은 탄핵소추를 각하해야 할 중대 사유로 부각됐다. 이는 탄핵 반대 입장인 헌법재판관들이 물러서지 않고 버틸 힘이 됐고, 탄핵 찬성 입장인 헌법재판관들에게는 추후에라도 '처벌'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안겼다고 본다. 만일 헌재가 윤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탄핵심판 과정의 위법과 흠결을 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 대한민국 정체성 지키는 투쟁
세키가하라 전투는 단순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국을 장악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쟁과 혼란으로 밤낮을 새는 일본 센고쿠 시대(戦国時代)를 완전히 끝내고 260여년간 평화를 누리는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년~1867년 11월 9일)'를 여는 결정적 전투였다. ('에도'는 지금의 '도쿄')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찬반 투쟁은 단순히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싸움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지, 민중민주주의 국가로 향할 건인지, 한미동맹·한일협력을 근간으로 삼을 건인지, 중국·북한과 가까워지며, 그와 비슷한 사회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전투라고 본다. 빈부격차가 좀 있더라도, 하루하루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길을 갈 것인지, 다 같이 못 사는 불만 없는 사회를 지향해 하루하루 망해 갈 것인지 결정하는 전투라는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싸움이지만, 실제로는 '체제전쟁' 중인 것이다.
의대 증원에 반대해 윤 정부를 비판했던 의대 교수가 탄핵반대 집회에 나와 연설하고, 정치에 거리를 뒀던 20,30대가 윤 대통령 탄핵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도 이 싸움을 체제전쟁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살아갈 대한민국 정체성을 자신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헌재가 법과 절차를 위반해가며 청년들의 뜻(탄핵반대)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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