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교육은 사회 진출을 앞두고 진로를 탐색하는 분기점이다. 학업 성취도가 미래를 결정짓는 이 시기에, 다문화 중‧고생들은 부족한 한국어로 학업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생김새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실 내 차별도 뒤따른다. 생계가 급한 부모들은 자녀의 학업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결국, 교과 과정을 못 따라가는 이들은 학업에 손을 놓는다.

◆'한국어를 익히는 것도 힘든데 교과 과정 따라가는 건 꿈'
해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청소년 시기에 한국으로 온 학생들은 한국어에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중등교육에 발을 들인 학생들은 높아진 교육 과정에 중심을 못 잡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난 2021년 한국 땅을 밟은 카자흐스탄 출신 아스카르(18‧가명)가 여기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지금 한국어 실력으로는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게 버겁기만 하다.
국어 수업에서 고전‧장편소설이 나오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문단마다 쏟아지는 어휘를 하나라도 놓치면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없고, 하교 후 2~3시간씩 번역해야 한다. 아스카르는 옥편까지 구매했지만 지난 학기 국어 내신은 7등급(전체 9등급)에 머물렀다.
그는 "국어는 한 작품으로 수업이 진행되기도 하는데, 특히 모르는 한 개 단어가 전체의 핵심 주제와 관련이 있으면 큰 일"이라며 "흐름을 못 따라가면 수업을 안 들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한국어가 부족한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이중언어튜터(강사)와 통역멘토링 강사들이 배치되고 있다. 이들은 교실에서 학생의 모국어로 학업을 지원한다. 학교 공모 신청으로 강사들이 채용되는데, 아스카르는 3년 반이 넘도록 해당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한국어는 암기가 중요한 사회탐구영역에서도 걸림돌이다. '윤리와 사상'에서 고대‧현대 사상가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아스카르는 교사의 판서를 메모하는 습관부터 생겼다.
한국 학생들보다 더 많은 필기 시간이 필요하지만 교사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스카르는 "한국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기억에서 빨리 사라진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으면 칠판에 적힌 내용들을 찍고 싶을 정도다"고 말했다.
한국어는 학습 참여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2023년 한남대 대학원 논문에 따르면 다문화 중학생 1‧2학년들은 한국어 능력이 뛰어날수록 학습 참여도가 높았다. 언어 장벽에 막힌 학생들은 학업 부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업 부진은 대학 진학 포기로 이어진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다문화 학생들의 고등교육기관 취학률은 40.5%로 전체 국민(71.5%)보다 31%포인트나 낮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어 공부가 세밀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영태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연구위원은 "한국어의 네 가지 영역은 쓰기와 듣기, 읽기, 말하기"라며 "이 중에서 쓰기와 읽기는 학업에 영향을 미치는 문해력과 직결된다. 한국어 수업을 하더라도 촘촘하게 성과를 측정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엄마 나라로 가라고 해요', 차별과 편견이 자욱한 교실

언어 장벽은 친구들과도 사이를 갈라 놓는다. 서툰 한국어는 교우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인종 차별과 편견 문제로 불거진다. 국가인권위원회 학교생활차별실태조사(2019년)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청소년 약 18%가 언어 폭력과 따돌림 등 차별을 겪었다.
지난달 만난 캄보디아 가정의 스렁사브리(16)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국어 발음 연습에 몰두했다. 3년 전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말을 더듬거리는 어머니로부터 한국말을 배우다 보니 버벅거리게 됐고, 친구들이 흉내를 내면서 놀렸다"고 말했다.
급기야 친구들은 스렁사브리의 어머니가 캄보디아 국적이라는 것까지 캐냈고 괴롭힘 정도는 더 심해졌다. 책상에 '너희 나라로 가라'는 낙서부터 '우리와 피부 색깔이 달라' 등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다.
스렁사브리는 "고등학교에 다른 지역의 학생들도 새롭게 올 텐데, 다문화 학생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말을 최대한 천천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골적인 따돌림이 있는가 하면 철저한 무관심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아스카르는 한국에서 3년 반 동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학교에 머무는 8시간 동안 그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
한국어가 부족한 탓에 번역기로 대화를 이어가자 친구들은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휴대전화에 한국 친구 연락처가 하나도 없다"며 "교회에서 만난 2~3명의 친구가 전부지만, 다른 지역에 있어 잘 보지도 못한다"고 했다.
원활하지 못한 교우 관계는 학교 부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15~17세) 62.6%가 학교 부적응 이유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라고 답했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한국 학생들이 다문화 학생들을 따돌리거나 무관심으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며 "고립된 피해 학생은 학업 의지가 줄다가 학교에 오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한국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를 받으면 학생들이 큰 상처를 받는다. 교내에서 인권 교육이 필요하고, 감수성이 쌓이면 차별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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