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 리뷰] 김현탁 연출의 강박(強迫)적인 전경화 '거인국의 국가'<걸리버스2>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걸리버스2>는 60분 동안 연출의 강박적인 전경을 보는 것 같았다. 김현탁다움으로 채우려는 강박이라고 할까. 그동안 김현탁에 의해 발가벗겨진 텍스트는 배우들의 감각으로 발효된 텍스트로 이식되어 왔다. 놀이, 의외성, 환기, 텍스트와 구조의 재배치. 몸성으로 파종되는 언어를 김현탁만의 조합으로 몽타주를 건축해 무대를 설계해 왔다. 이러한 탈구조적인 수용성을 들어내면서 재창작의 창안도 재활용하지 않는 방식을 취해왔다. 배우들은 철저하게 내·외면의 감각을 끌어올려 놀이성으로 무장해 지배적 연극 질서들을 거부하고 배우들을 현존하는 텍스트로 배치해 발화되는 김현탁의 언어는 브레히트적인 낯선 전경의 역사화로 전경화되고 그 불빛 사이로 이미지, 빛, 소리, 텍스트, 배우 감각들은 '살아있음'으로써 숙성된 연극을 보여왔다.

포스트드라마적이면서도 텍스트를 위배하지 않는 전위적인 작업 스타일임에도 텍스트의 뼈대를 난도질하고, 배우들의 강렬한 날것의 수행적인 움직임과 언어를 통해 텍스트에 생명을 부착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만큼 김현탁이 발효시키는 연극적인(무대) 퍼즐은 텍스트가 무질서하고 재료들은 극과 극 사이를 역주행하기도 하고 추상을 도구로 현실 풍경을 거세하는 퍼포먼스는 현존의 실제성을 형성하며 원작 텍스트를 재창안해 김현탁 텍스트를 복원해 왔다. 그동안 무대에서 보여준 광기, 천재성을 드러내는 도발적인 재창작, 원작보다 강렬한 김현탁 텍스트로 복원하려는 강박의 실험들로 이어져 오면서 <산불>, <메디아 온 미디어>, <열녀춘향>, <혈맥>, <세일즈맨의 죽음>, <자전거, Bye-Cycle), <하녀들>은 김현탁을 드러내는 작품들이었고, <걸리버스2>는 김현탁으로 발효되지 못한 채 특징만 두드러진 강박의 무대였다.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강박의 박자 '돌아와요 부산항'의 '꽃 피는 봄', '가질 수 없는' 뱅크의 '너'

스위프트의 「걸리버스여행기」는 김현탁의 <걸리버스2>로 이동되면서 김현탁이 여행하는 국가와 그 세계의 풍경은 포스터에서도 드러나 있다. 80년대 대표적인 건축물인 63빌딩을 지탱하고 있는 한국 사회 거인(국)의 두 팔은 군부정권의 전체주의적 세상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조롱 된다. 5, 18의 역사, 지역갈등과 정치, 신자유주의와 승자독식의 미국발 자본주의로 거대해진 시장과 부동산 국가는 김현탁이 배경음악으로 차용하고 있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처럼 기다려도 '꽃피는 동백섬'이 '봄'이 되어 돌아올 수 없는 특정한 지배권력의 거인들과 역사의 잔재들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로 호출된다. 그런 세상에서 김현탁이 바라보는 여행의 종착역은 '죽음'만이 희생되는 세상이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달려야 하는 현실은 80년대와 다를 바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파편화된 옴니버스는 화려한 치환(스머프, 80년대 롯데, 해태 프로야구, 베르사유의 장미, 애국가,돌아와요 부산항 가요, 파우스트와 아이스링크 경기장, 홈쇼핑과 군인, 부동산 다큐 영상, 전두환의 소환)기술로 장면화되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전경의 역사를 몽타주를 쌓아 올려 미장센으로 배치하는 현재와 역사성은 규칙이 없는 낯섦으로 교란하며 김현탁의 한국 사회 걸리버스여행은 80년대를 돌아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의 80년대로 귀환한다. 김현탁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커튼콜을 뒤집고는 시민들과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며 한 관객이 <착해진 가가멜> 공연 때 전두환 대통령을 만난 이야기로 시작된다.

프롤로그를 주도하는 배우의 억양은 북한 아나운서 말투로 바뀌고 전두환의 이야기(가가멜)는 <개구장이 스머프>로 치환시킨다. 다이아몬드를 쟁취하기 위한 가가멜과 고양이 아즈라엘이 스머프들과 대항하는 에피소드는 파우스트의 괴테와 메피스토로 묶이고 다카라즈카 극단 베르사유의 장미를 소환해 대물림 되는 군부 권력을 풍자화하면서도 베르사유의 프랑스혁명은 여전히 일본 식민 지배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김현탁스러움으로 장면을 부착하고 있는데, 다카라즈 극단의 표현형식을 차용해 배우들 대화를 한국어 발음의 일본어 말투로 전환한 것도 역사의 잔재는 여전히 '혁명'이 시한폭탄이 되어 유효화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폐허의 극장 공간을 배우가 부동산 중개업자로 등장해 '촛대 타워'를 매매하는 영상은 양극화로 초고도 자본화된 한국 사회의 부동산 공화국을 비틀고, 아이스링크의 롯데와 해태의 응원전에 부채춤, 우리 전통 가락,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배합하고 칠성사이다를 표상하는 판넬로 응원전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칠성이 미국 성조기로 치환되어 한국 사회는 '꽃피는 역사로 돌아올 수 없는' 미국발 자본주의로 거대해진 신자유주의의 동백섬으로 은유되어진다. 섬은 우리 전통 가락으로 민족의 부채춤을 추어도 정치와 이념으로 균열되어 아이스링크를 온전히 달릴 수 없는 현재인 것이다. 홈쇼핑에 난입한 군인은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친미주의를 들어내고 아이스링크를 달리는 시민은 군인이 발사하는 잔혹성으로 5,18 죽음의 무덤이 되어진다.

애국가는 죽음과 역사를 위로 할 수없는 공허한 호루라기 소리가 되어 가고 빙판 아이스링크를 혼자 달리는 롯데 선수를 향한 첼로 리듬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응원가는 "꽃 필수 없는 동백섬"이 되어진다. 김현탁의 <걸리버스2>에 쌓아 올려진 걸리버여행 국가는 80년대 군부를 돌아 5,18, 친미와 반공, 지역과 정치 갈등, 부동산과 신자유주의, 자본의 약탈과 친일 역사성 그리고 역사의 사죄와 반성이 없는 80년대로 멈추어진 '오늘'이란 점을 드러내고 있다. 김현탁 연출의 <걸리버스2>를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해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무대의 잔상은 김현탁스러움으로 채워 넣으려는 강박의 표현과 형식들이고 남는 것은 아이스링크 장면과 정준혁, 이성원의 몸의 감각이다. 특히 롯데 유니폼으로 마지막 장면까지 생존한 이성원은 좋은 배우이 다. 공연은 원작 텍스트를 분해해 다양한 재료를 넣어 시공간의 전경을 교란해 무대에 교집합을 보여주는 기술만 부각되어 보였다. 통로가 막혀 있는 미로와 된 숨은그림찾기는 때로 불편할 수 있다. 공연은 23일까지다.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걸리버스2.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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