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출신 아이딘(13‧가명) 군은 지난 겨울방학 내내 수학 과목의 '정수와 유리수', '수직선' 단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친구들이 40분 만에 풀어내는 수학 20문항. 아이딘 군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성적도 고작 30점.
아이딘 군은 "수학 푸는 방법을 익히려고 해설지를 봐도 어렵다. 중학교에선 다른 과목들도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 부모님 수입으로는 학원을 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다문화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면서 배움의 문턱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 경제적 현실을 마주한 다문화 학부모 "학원 못 보내요"
아이딘 군처럼 해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온 뒤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 2019년 456명이었던 중도입국‧외국인 학생 수가 지난해 1천228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부모의 언어‧경제 지원 한계로, 이들의 학업 부진 문제가 더욱 크게 불거질 전망이다.
김춘수 대구가톨릭대 한국어다문화전공 교수는 "한국 교육을 접하면서 살아온 국내 출생 학생들과 달리 중도입국‧외국인의 경우 언어부터 새롭게 배워야 한다. 문화도 낯설어 학교 적응이 어렵고 학업을 중단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자녀를 돕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아이딘 군 어머니 나탈리아(53‧가명) 씨는 학원비 이야기에 연거푸 한숨을 내뱉었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벌어 들인 월 230만원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그는 "남편은 취업이 안 되는 비자라서 혼자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학원비로 매달 20만~30만원 지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2021년)에 따르면 다문화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300만원 미만이 49.3%로 절반에 이른다. 100만원 미만도 10.2%나 된다. 생계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상황에서 사교육비 지출은 꿈만 같다.
여성가족부는 다문화 학생들의 학업을 돕고자 '교육활동지원비'를 지급하고 있다. 교재 구입과 학원비 등에 쓰이지만, 초·중·고등학교별로 연 40만~6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나탈리아 씨는 최근에도 생계의 굴레에 좌절했다. 모국어(러시아어)만 쓰는 아들을 한국인이 많은 중학교에 보내는 데 이사 비용만 수천만원이나 됐다. 그는 "보증금만 1억원이라는 말에 원하는 학교로 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소득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직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장오 강남대 교수가 다문화 중고생 11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부모 월 소득이 200만~300만원인 학생의 교육 성취 욕구가 100만~200만원 구간보다 높았다.
김경민 대구한의대 다문화복지한국어학과 교수는 "다문화 학생들의 학업 격차에 경제적 배경은 하나의 요인"이라며 "복지 프로그램들의 접근성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아이들 공부 돕고 싶은데, 뭐부터 알아봐야 할까요"

방대한 교육 정보를 손에 넣는 것도 쉽지 않다. 베트남 국적 어머니인 프엉투이(38) 씨는 한국 교육에 대해 전혀 모른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 준희(16‧가명) 군의 학업을 지난 8년간 지켜봤지만, 수시로 변하는 교육 제도를 따라가는 게 어렵다.
올해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된다는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뭐예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인데 고교학점제를 몰랐다. 정보를 몰랐던 내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오랜 한국 생활 덕분에 엄마들 모임에서 교육 정보가 오가는 것은 눈치챘다. 그러나 자신의 정보 부족으로 주눅 들기 일쑤였다. 그는 "내가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는데 과연 모임에 낄 자격이 있는지 걱정이다. 마치 큰 벽이 있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다문화 학부모 상당수는 학업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자녀의 진학 및 진로에 관한 정보 부족'으로 고충을 호소하는 다문화 학부모는 37.6%에 달한다.
프엉투이 씨는 교육 정보의 창구로 학교를 꼽았다. 그는 "학교에서 오는 정보는 '해가 될 만한 게 없다'는 믿음이 있다. 작은 소식부터 학업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안내받고 싶다"고 말했다.
◆ 진학‧입시에 기댈 곳 없는 학생들

다문화 학생들이 경제적 빈곤과 교육 정보 갈증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대학 입시가 코앞인 수험생들의 부담은 더욱 크다.
중국인 가정의 지영(17‧가명) 양은 지역거점국립대 진학을 목표로, 요즘 대학 모집 요강을 살핀다. 하지만 적합한 수시 전형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다문화 가정 자녀로서 '사회배려자 전형'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지영 양은 "입시 준비생들이 모인 채팅방에 들어가서 정보를 얻는 게 전부"라며 "대학과 전공을 정한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만 급해지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 현실에 막힌 다문화 학생들에게는 진학 컨설팅과 같은 사교육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카자흐스탄 국적의 아스카르(18‧가명) 군은 "외국인 전형에서 필요한 서류들과 어느 수준의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며 "혼자 찾아봐도 어려운 한국말이 많아서 번역에 시간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입시 정보에 목 마른 학생들의 학교 밖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다문화가족센터 내 '진학컨설팅'은 부족한 예산 탓에 1대1로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대구 한 가족센터 관계자는 "대학 입시는 1대1로 진행되는 게 제일 좋은데, 전문 강사를 부르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단체로 상담을 진행한다"며 "예산이 몇 년째 동결된 상태인데 늘어나는 교육 수요에 맞춰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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