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신동마을. 옹기종기 모인 민가에는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창고 지붕은 검게 그을리거나 잿빛이 감돌았고, 운전석이 모두 타버린 화물차도 눈에 띄었다. 강한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마감재가 흘러내린 지붕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마을 안길에 세워둔 경운기는 불길에 휩싸인 듯 바퀴가 모두 녹아내렸다. 불길에 뼈대만 남아있는 집들을 지나 마을 끝에 이르자 폭격을 맞은듯 완전히 무너져 내린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이 살던 흔적은 무너진 흙벽이 전부였고, 마당 구석에는 우그러진 샌드위치 패널과 벽체 잔해만 쌓여 있었다.
불에 탄 기둥과 벽체, 외양간만 남아있는 집 마당에서 김민수(52) 씨 3형제가 말없이 서 있었다. 이 집에는 큰 형과 막내 동생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무너진 지붕 아래, 아직도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 구석에 막내 동생 김역수(47) 씨가 세숫대야로 물을 부었다.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지붕은 모두 무너졌고, 단 하나의 세간살이도 남은 게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일군 터전이 한순간에 모두 무너진 셈이다.
마당 한쪽에는 불에 탄 경운기와 트랙터, 관리기, 이앙기 등 각종 농기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군위에서 달려온 둘째 동생 김재영(50) 씨는 "불에 타 버린 농기계들만 6천만원 상당"이라며 "모두 아껴가며 하나씩 사 모은 농기계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남아 있는 건 소 두 마리와 송아지 한마리가 전부다. 다행히 화마 속에서도 소들은 목숨을 건졌다.
두 형제가 산불 발생 소식을 들은 건 전날 오후 1시 30분쯤. 산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대피 방송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티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큰형 김민수 씨는 "지붕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집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고, 손 쓸 겨를없이 번져 나갔다"고 했다. 다급하게 빠져나온 형제가 들고 나선 건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전부였다.
연로한 김씨의 부모는 모두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한동안 말이 없던 3형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말 막막하다"고 되뇌였다.
그들은 "집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께는 도저히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다"고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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